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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농담이예요

김형수 박사(루터대학교 교수)
2019-12-02

 

 

 

김형수 박사

루터대학교 교수

한국상담학회 총무이사

 

정신분열로 진단된 K는 가물에 콩나듯 상담실에 오는 내담자였다. 잊을 만하면 나타나 두서없이 얘기하고 훌쩍 가버리곤 했다. 시간을 비워뒀다가도 아무 연락 없이 바람 맞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상담 약속에 한해서는 나에게는 양치기 소년 같은 내담자였다.

 

상담실에 오는 이유는 상담보다는 오는 과정이 즐겁기 때문이었다. 버스를 타고 다니면 몸이 떠있는 느낌이 들고 그것이 좋아서 덕분에 상담실도 온 것이다.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는 이 부양감은 K가 지닌 분열증상으로 인한 감각 이상 가운데 몇 안되는 유쾌한 느낌이다. 아마도 굳이 상담실이 아니라도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이 다른 곳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수록 굳이 상담실로 오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반년이 지나고 다시 상담실로 찾아 온 후 한 동안 꼬박꼬박 상담 약속을 지키고 함께 상담을 함께 하였다. 내가 주로 한 일은 K가 일관성 없이 하는 여러 얘기들 중에서 서로 관련성이 있어 보이고, 현실과 관련된 일들을 찾아 연결을 시켜주는 것이었다. 사고형식이 혼란스럽고 내용 면에서 일반적인 대화와는 달리 두서없는 단서를 따라 말이 이어지기 때문에 중간 중간 얘기를 연관 짓고 넘어가지 않으면 찢어진 신문 읽듯이 내용 연결이 어려웠다. 그래서 상담 중에 ".....이었다는 것은 .... 이라는 얘기지.", "K 생각에는 ...에 관한 얘기가 내가 질문한 ....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얘기한 건가 보구나."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K는 만화가가 되고 싶어했다. 자신이 만화가가 될 수 있을 지에 대해서 확신이 없고 그래서 불안하다고 얘기하곤 했다. 자신이 보는 세상이 다른 사람이 보는 세상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K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이상하고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 때문에 만화가 또한 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 얘기를 하며 지내던 중 상담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 검사를 실시하였고 몇 가지 지표들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즈음에 K는 다시 상담실에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또 몇 달이 지나고 어느 날 다시 K가 한결 훤한 모습으로 상담실에 찾아왔다. 인사를 하려고 찾아왔다고 하였다. 모습이 전과 달리 좋아 보이기도 했고 반가워서 안부를 묻는 중에 갑자기 K가 정색을 하면서 나에게 말하였다. 선생님 요즘 제가 이상한게 보여요. "아침에 세수를 하려고 하면 세면대 위에 보거스(만화에 나오는 캐릭터)가 나타나서 말을 걸어요." 순간 나는 동작이 멈추고 속으로 생각이 스쳤다. "~ 좋아진게 아니었구나". 그때 K는 크게 웃으면서 "선생님 농담이예요. 제가 요즘 만화학원에 다닙니다. 공부를 시작한지 2달 쯤 됐어요...."

 

K가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간 후 혼자 상념이 많았다. 내가 마음속에 늘 경계심이 있어서 내담자의 변화를 진심으로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진실과 농담을 구분할 수 없었던 그 순간에 내담자가 지닌 삶의 강인성과 상담실에서 함께 보낸 시간을 확신하지 못하는 나의 본질이 확연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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