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소식

상담전문가 칼럼

  • 학회소식
  • 상담전문가 칼럼
공유하기
인쇄하기 인쇄하기

인간본성에 대한 프로이드와 로저스

이재규 박사(공주대학교 교수)
2019-11-15

    

 

이재규 박사

공주대학교 교수

한국상담학회 대전세종충청상담학회장

 

최근 OO연쇄살인범 A씨임이 밝혀지면서 몇 명에게 몹쓸 짓을 했는지, 몇 명을 살해했는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어떤 고통을 받아왔는지가 재조명되고 있다. 그리고 상담자로서 나는 “A씨 같은 사람도 상담이 가능한가?”의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좀 더 정확하게는 “A씨 같은 사람도 상담을 통해서 변화가 가능한가?”상담자인 내가 A씨를 상담하는 것이 가능한가? , 상담자인 나는 A씨를 상담하고 싶어 하는가?”하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A씨 같은 사람도 상담이 가능한가?”의 질문은 결국 상담자가 인간의 행동과 본성을 무엇으로 보고, 어떤 맥락에서 이해하는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나는 여기에서 “A씨 같은 사람도 상담이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에 RogersFreud의 견해를 활용하여 나의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인간의 행동과 본성에 대한 RogersFreud의 견해

FreudRogers가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둘 사이의 핵심적 공통점이 있다. 바로 행동만으로는 인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성을 고려해야 하며, 행동을 일으키는 본성과 행동의 관계를 전체적으로 살펴보아야 인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점이다.

A, 나 그리고 그대를 포함한 인간의 본성은 어떠한가? 이에 대해서, 얼핏 보면, FreudRogers는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것 같다. Freud에서 인간본성에 해당하는 개념은 es(id, 본능)인데, Freud는 그것의 특성을 충동성, 파괴적, 이기적, 악한으로 보았다. 반면, Rogers에서 인간본성에 해당하는 것은 self-actualizing tendency(자기실현경향성)인데, Rogers는 그것의 특성을 사려깊고, 생산적이며, 믿을만한, 착한으로 보았다.

본성은 타고난 것으로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인 속성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두 사람의 견해가 다른 것은 그냥 묵과할 것은 아니다. 같은 것을 보고 다르게 말하는 두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둘 다 틀렸거나 둘 다 부분만 보았다는 것을 뜻한다. FreudRogers는 인간 본성에 대해서 서로 다른 말을 했을까? 인간 본성에 대한 그들의 견해는 둘 다 틀렸거나 둘 다 부분만 보았는가? 아니면, 다른 가능성이 있는가?

두 학자가 같은 것에 대해서 다른 말을 하는 이유를 찾고자 할 때 고려해야 하는 점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학문을 하는 입장이 달랐다는 점이다. Freud는 과학자였기 때문에 인간 행동이나 본성을 연구할 때, 행위자 밖에서 관찰하였다. 인간의 행동이나 본성을 행위자 밖에서 관찰하면, 행동이나 본성의 작용이 행위자 자신에게 끼치는 영향이 아니라 행위자의 대상이 되는 타인에게 끼치는 영향을 관찰하게 된다. 반면 Rogers는 현상학자였기 때문에 어떤 현상을 안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 인간의 행동이나 본성을 연구할 때 행위자 안에서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의 행동이나 본성의 작용이 행위자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보려고 노력한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인간본성에 대해서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프로이드와 로저스는 둘 다 틀렸거나 둘 다 부분만 본 것이 아니다. 그들은 각기 다른 관점(위치)에서 인간의 행동과 본성을 관찰하고 잘 정리해서 우리에게 전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젊은 부부가 모처럼 오붓한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데 그들의 어린 아이가 축축한 엉덩이 때문에 앙앙거리고 운다. 앙앙거리고 우는 행동은 아이의 본성에 따른 작용이다. 아이의 행동을 아이 입장에서 보면, 아이는 축축한 엉덩이가 주는 불쾌함을 피하고 뽀송뽀송한 엉덩이를 느끼고 싶어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자기실현적 행동이다. 반면, 아이의 행동을 부모 입장에서 보면, 아이는 모처럼 부모 자신들만의 시간을 방해하는 충동적이고, 이기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인 것이다. 극히 순수한 아이가 본성에 따라 우는 행동도 그 행동을 보는 관점에 따라서 순전히 자기를 실현하려는 행동이기도 하고, 타인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A, [상담을 통해 변화가 가능하다]는 로저스

Rogers에게 “A씨는 상담을 통해 변화가 가능한가요?”라고 묻는다면 그는 아마도 당연합니다.”라고 답변할 것이다. “어떻게 가능하지요?”라고 다시 질문을 한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이 답변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자아실현실현성이라는 본성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A씨가 한 행동은 강간, 살인으로 범주화할 수 있습니다. 강간은 비록 그것이 타인에게 치명적인 손상을 초래하지만 행위자의 입장에서 보면, 성적 만족이라는 자아실현경향성과 맞닿아 있습니다. 성적 만족을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서 만족하는 대신에 강간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충족하려 했던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성적 만족을 추구하는 것 자체는 자아실현경향성과 맞닿아 있습니다. 상담을 통해서 A씨가 자신의 성적 만족 욕구를 정확하게 지각할 수 있고, 성적 만족을 강간과 같은 위험한 행동이 아니라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서 충족할 수 있음을 자각한다면, 그는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살인 역시 해서는 절대 안 되는 행동이지만, 살인을 통해서 도모하고자 했던 것은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살인을 하지 않으면 범죄가 드러나서 자유의 박탈, 사회적 비난 등과 처벌을 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것은 결국은 자아실현경향성과 맞닿아 있습니다. 만약 그가 그에게 매우 중요한 성적 만족을 범죄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인격적 관계를 통해서 실현할 수 있음을 인식할 수 있다면, 그리고 인격적 관계를 맺는 능력을 개발할 수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에게 다시 한 번의 생이 주어질 수 있다면, 그는 자신의 안전에 치명적인 방해물인 살인행위를 다시는 하지 않으려고 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A, [상담자로서 당신을 상담하고 싶다]는 프로이드

상담자인 나와 그대는 A씨를 상담하는 것은 가능한가? 이 질문에 어떤 이는 절대 상담하고 싶지 않다고 느낄 것이고 다른 이는 기꺼이 상담하고 싶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마도 절대 A씨를 상담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상담자가 상담자 전체의 90~95% 정도 될 것이고, 기꺼이 상담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상담자가 5~10% 정도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A씨를 상담하고 싶다는 마음은 비정상적이며, 흔한 마음이 아님을 인정한다. 그런데 90~95%5~10%의 차이는 무엇일까?

A씨를 절대로 상담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진 상담자는, 근본적으로, 상담자 자신과 A씨는 다른 본성을 가지고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 A씨는 강간과 살인이라는 나쁜 행동을 한 사람이고, 자신은 그런 유혹에 대해서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은 착한 사람이고, A씨는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은 착한 사람이고 A씨는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상담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프로이드의 관찰과 통찰이 틀렸다는 입장을 지지하는 것이다. 이들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은 없으며, 인간은 서로 다르며, 어떤 이는 착한 본성을 가지고 있고, 어떤 이는 나쁜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앞에서도 생각했듯이 매우 정상적인 생각이다. A씨를 기꺼이 상담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상담자는 프로이드의 관찰과 통찰이 타당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옳게 적용한 상담자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의 본성은 결국은 악하다는 프로이드의 통찰이 타당함을 이해하고, 그것을 바르게 적용한 상담자라고 할 수 있다. 강간과 살인을 한 A씨나 그런 것들을 하지 않는 상담자 자신이나 본성적으로 악하며, 악한 행동을 하는 같은 존재임을 자각한 것이다.

이 부분을 읽는 어떤 독자는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가? 강간이나 살인을 한 A씨와 그런 행동을 전혀 하지 않는 가 어떻게 같은 본성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어떻게 같이 악한 본성을 가진 존재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독자들은 이런 점들에게 대해서 생각해보길 바란다. 당신이 생명체이듯이, 당신이 오늘 아침에 먹는 돼지도 생명체라는 점에서 같은가 아니면 다른가? 생명체라는 입장에서 보았을 때, 당신과 당신이 먹은 돼지 중에서 어떤 생명체가 더 가치 있는 생명체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맛있는 식사를 하는 자기실현경향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같은 생명체의 돼지가 살해당하는 것에 기꺼이 동참하고 있지 않았는가? 당신은 맛있는 식사의 쾌락을 누리기 위해서 오늘 아침에 당신이 먹는 돼지가 당신과 같은 생명체라는 것조차 무의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이제껏 살아오지 않았는가? Freud가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라고 했을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위와 같은 것들이다. 생명을 가진 존재들은 생명을 유지하려는 경향성으로 인하여 타인 혹은 타생명체, 타존재에게 해를 끼칠 수밖에 없음을 본 것이다.

 

상담전문가칼럼 작성 의뢰를 받고 어떤 소재로 글을 쓸 것인가를 고심하고 있을 때 A씨가 OO연쇄살인범임이 밝혀지면서, A씨와 같은 범죄자들에 대해 토론을 빙자한 많은 가십거리들이 회자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나는 A씨와 같은 범죄자들에 대한 상담학자의 관점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 주제로 칼럼을 쓰고 나서 이것을 상담전문가 칼럼에 기고할 것인지 망설이고 망설였다. 혹시 이글이 A씨와 같은 범죄자를 옹호하는 것처럼 읽혀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분명하게 밝히지만, 필자는 A씨와 같은 범죄자들의 행위를 절대 옹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런 끔찍한 행위를 한 범죄자들조차도 우리 자신들과 같은 본성을 가진 존재들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그들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은 독자들 중에서 A씨와 같은 사람들로 인하여 상처를 입은 분들이 있다면, 그런 상처의 희생자로 살기보다는 상처에도 불구하고 승리하는 삶을 사실 수 있기를 기원한다.

상담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A씨와 같이 끔찍한 행동을 하는 사람도 만나고 상담을 해서, 그들이 자기실현경향성을 실현하도록 돕되, 자기실현경향성을 실현하는 과정이 타인, 타생명체, 타존재에게는 엄청한 해를 끼칠 수 있음을 볼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따라서 이 주제에 대해서 한국의 상담자들이 한 번 정도는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최종적으로 기고하기로 결정했다. 이글에서 밝힌 프로이드와 로저스의 인간본성에 대한 견해는 프로이드와 로저스 자신들의 견해라기보다는 그들의 견해를 필자가 해석한 것임에 불과하다는 점을 명확하게 하고 싶다. 그들의 견해에 대한 필자의 해석이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서 따져보는 것은 전적으로 독자에게 달려 있다. 또한, A씨와 같이 끔찍한 행동들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 역시 전적으로 독자에게 딸려 있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이전글 선생님 농담이예요
다음글 알아차림과 전문상담사의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