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건강 돌아보기(2)] 마음만으론 버틸 수 없을 때

정애경(경인교육대학교 교수  & 한국상담학회 홍보위원장)

처음 우리 학교에 임용되었을 때만 해도 교권 침해 사건이 자주 보고되었고, 선생님들의 사기는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학술지에는 ‘교사 소진(burnout)’ 연구가 부쩍 늘었고, 학회에서 만나는 상담자들은 “요즘 내담자 중에 선생님이 많아요.”라는 말을 자주 했다. 우리 학교 상담센터도 교육청과 MOU를 맺고 교사 마음돌봄과 소진을 주제로 워크숍, 집단상담, 개인상담을 진행했다. 사회적으로도 ‘자기돌봄’, ‘마음돌봄’이 중요한 화두가 되었던 시기였다. 나 역시 그 일을 의미 있고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러던 중 2023년 여름, 서이초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대학원에 다니던 선생님들을 위한 지지집단 모임을 열었는데, 서이초 선생님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모인 분들 대부분이 “사실 나도 비슷한 위기를 겪었다”라고 고백했다. 그 고통의 깊이와 무게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동시에 나는 선생님들이 아동학대로 고발당하고 모욕감을 느낄 때 옆에서 위로하고 함께 분노하기는 했지만, 정작 그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깊이 들여다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담이론은 심리적 어려움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변화를 이끌어내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러다 보니 상담은 주로 ‘개인 내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마음을 돌보는 데 초점을 둔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어려움이 개인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어떤 고통은 사회문화 속 불평등이나 제도적·구조적 억압으로부터 생겨난다. 이런 경우, 아무리 상담을 받고 마음을 다잡아도 사회가 바뀌지 않는 한 어려움은 반복되고 변화는 어렵다. 교사의 소진과 무기력, 분노와 두려움 또한 마찬가지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마음돌봄이 잠시 버티게 해줄 수는 있다. 그러나 문제의 구조가 그대로라면, 결국 다시 다칠 수밖에 없다.

최근 상담 분야에서도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사회구조 상담역량(structural competency)’이 주목받고 있다. 이는 사회적 불평등이 개인의 심리와 행동, 상담 장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하고 개입할 수 있는 상담자의 능력을 뜻한다. 이제 상담자는 내담자가 자신의 어려움을 ‘내 탓’으로만 여기지 않도록 돕고, 문제의 원인을 함께 살펴야 한다. 상담실 안에서는 스스로 할 수 있는 변화를 찾아가되, 상담실 밖에서는 함께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려는 마음과 행동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상담자의 역할이다.

상담은 분명히 도움이 된다. 심리적 어려움을 완화하고, 버티는 힘을 키워주며,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문제의 ‘원인’이 아닐 때, 불합리한 사회제도의 변화 없이 고통은 근본적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이때 문제를 바꾸는 힘은 연대와 시민행동에서 나온다. 서이초 사건 이후 거리로 나온 교사들이 목소리를 냈고, 그제야 법이 개정되었다. 물론 법이 바뀌었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선생님들은 상담뿐 아니라 연대와 시민행동을 통해 자신과 교육공동체를 함께 돌보는 방법을 알고 있다.

나는 상담의 효과가 무엇보다 ‘사람이 사람을 아끼는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그 마음이 우리를 타인의 자리에 서게 하고, 함께 고통의 방향을 바라보게 한다. 누군가의 아픔에 정확하게 공감하는 사람은 그와 함께 서서 세상을 조금씩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