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용기

최선남 (연차학술대회위원장  & 영남대학교 휴먼서비스학과 가족미술치료 교수)

스피커를 켜고, 노래를 선택한다.

나의 유일한 애창곡에서 파바로티의 아베마리아까지...

가슴이 짠하기도 하고,

노랫말에 감정을 실어 따라 부르기도 해본다.

사랑의 감정을 떠나보낸다.

-나의 메모-

2025년 연차학술대회 준비위원장의 역할을 얼떨결에 맡게 되었다. 반드시 내가 해야 할 의무도 책임도 없었는데 누군가 해야 한다면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결정했다. 작년 학회에 함께 갔던 두 아들은 엄마인 내가 힘들까봐 걱정을 했다. 주위 여러 교수님들도 응원보다는 염려의 마음을 내비치셨다. 그 당시 나는 아직 해보지 않은 일이라서 그런지 염려와는 달리 일 년에 한 번 대면으로 만나는 회원들과의 만남의 장인 연차학술대회가 의미 있는 만남의 장이 되기를 바라며 벌써 대회의 그림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준비위원이 꾸려지고, 일을 함께해 나갈 4명의 간사들이 결정하면서 우리는 매주 회의 날을 정해 지속적으로 만났다. 생각했던 것보다 계획하고 살피고 확인하고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만남을 가지면 가질수록 주위 교수님들의 염려가 실감이 되었다. 행사 장소 선정, 강사 섭외, 온, 오프라인 동시 진행을 차질 없이 진행할 수 있는 전문기관 선정, 장비, 홍보, 학술발표자와 토론자 선정, 학회원들에게 제공할 기념품, 숙박 장소와 식당, 무더위를 조금이라도 피하는 방법 등 행사를 진행하려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세밀한 부분까지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점점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했고, 갈등의 시간도 있었다. 

모학회 사무국과의 지속적 연계, 논의, 협력과 협조 등 해야 할 일들로 내 마음에 그려놓은 그림에는 더 많은 변형이 일어났고, 준비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스케치한 그림에 색을 더하듯 완성도가 높아질수록 마음의 불안은 커졌다. 1년 만에 만나는 회원들은 어떤 강의를 접하고 싶을까? 회원들이 만족할까? 회원들에게 도움이 될까?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어떻게 하지…. 준비하는 책임자로서의 불안은 커졌다. 그러나 이 불안은 회피할 수 없었고 준비 과정에서 준비위원들과 불안을 나누면서 천천히 조금씩 안전하게 만들어 갔다.

진행 과정에서 복병은 다른 곳에도 있었다. 회원들을 위해 준비하지만 회원들의 불만은 마지막 준비와 행사 기간까지 끊이지 않았다. 그 과정을 경험하면서 꼭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난 아직 인터넷으로 물건을 한 번도 사본 경험이 없기에 뭔가 시스템적으로 선택하는 게 두려워 전화선 너머로 들려오는 회원들이 불만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회원들의 불만은 오히려 불안감으로까지 느껴졌다.

이제 2일간의 연차학술대회 행사는 꿈 같이 지나갔다. 

이 과정에서 나는 여러 가지 배운 것도 깨달은 것도 많고, 아직도 멈추어 생각해 보는 것도 많다. 

먼저 이 많은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연차학술대회에 참석하는 모습을 보면서 회원들의 열정에서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그동안 한국상담학회의 역대 그리고 현 학회장과 운영위원들, 이사분들의 헌신과 회원들의 불안을 담당해야 하는 학회사무국의 노력을 강하게 느꼈다. 이들의 노력으로 한국상담학회가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핵심적 학회로의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을 한층 더 크게 느낄 수 있었다. 뿌듯하고 가슴 벅찬 경험이었다. 

두 번째는 회원들의 불만을 들으면서 안전하고 싶은 마음이 느껴졌다. 우리가 만나는 내담자들의 마음도 때로는 이와 같은 안전을 원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오늘은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이지만 어제와 내일은 나 역시 내담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달으니, 전화선 너머의 회원들의 불만을 공감했다. 마지막으로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학회가 나아갈 책임감이다. 한국상담학회 회원을 위하는 일, 국내 상담자를 위한 그들의 학문적 충족과 상담자로서의 자리매김을 위해 학회가 나아가야 할 역할과 책임이 크게 느껴졌다. 이 책임감으로 지금 이순간도 한국상담학회는 회원들의 권익을 위해 뛰고 있다.

연차학술대회를 준비하고 마무리하면서 단 한 사람 ‘학회의 회원’만 생각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용기와 각자 다른 불안과 염려가 더 안전한 준비를 위한 밑거름이 되었으며 그 과정이 내담자를 대하는 상담자로서의 사랑과 닮아 있었다. 이제 연차대회에서 경험한 사랑의 감정을 추억으로 남기고 또 다른 만남과 생활 속에서 선택해야 할 용기를 준비한다. 이 모든 경험은 내가 연차학술대회의 준비 위원장이 아니었으면 할 수 없었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경험의 장을 열어준 한국상담학회에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