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처음 상담과 인연을 맺은 것은 자살 예방 상담 자원봉사자 교육을 받았을 때다. 자원봉사활동을 하면서 상담에 보다 깊은 관심을 갖게 되어 유학을 가게 됐다. 전공자 신분으로 만났던 내담자들 중에는 가정폭력과 성폭력 피해자들이 상당 수 있었다. 전공 시험을 보고 수퍼비전을 받는 것도 힘들었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폭력과 학대의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상담실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늘 고통스러웠다. 아직 수련이 부족해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아직 치유되지 않은 내면의 상처가 건드려져서 그럴 것이라고도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증상은 전문가 자격을 취득하고 수백시간의 개인 상담과 수퍼비전을 받은 뒤에도 해결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폭력과 학대의 피해자들을 다수 만나고 났을 때 증상이 나타났기 때문에 명확한 원인을 알 수 있지만, 과거에는 증상이 언제 어떻게 무엇때문에 나타나는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이 증상에 대해 상담시간이나 수퍼비전시간에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필자와 비슷한 증상을 경험했던 동료 상담전문가들 중에는 상담시간을 줄이고 다른 일을 좀 더 하는 사람도 있고, 상담의 세계를 완전히 떠난 사람들도 있다. 상담에 대한 회의감을 갖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인간관계 자체를 회피하는 등 끝이 없는 심리적 소진 상태에 빠지는 경우도 보았다. 필자도 그런 심리적 소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다가 ‘2차 트라우마’라는 개념을 알고 난 뒤에 비로서 필자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트라우마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는데, 이 때에 상담자도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된다. 이것을 ‘2차 트라우마’라고 한다. 물론 내담자가 경험하는 것만큼 큰 트라우마는 아니지만, 그런 내담자가 여러명일 경우 2차 트라우마들은 누적이 된다. 그리고 누적된 2차 트라우마는 적지 않은 파괴력을 갖는데, 내담자의 트라우마와는 속성이 달라서 치료법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 

2차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되면 상담자는 소진이되고, 열정을 잃고, 자신감을 잃고, 회의감을 느끼고, 만사가 귀찮고, 피곤함, 절망감, 무능감, 정죄감, 분노와 냉소, 주의 집중 곤란, 과민, 짜증 등을 경험하게 된다.  2차 트라우마는 단시간에 치료가 되는 치료법이 있는 것 같지 않다. 수퍼바이저와 동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하고 심리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자기를 잘 관리할 수 있는 지혜를 배우고 연습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요즘 우리 사회에 상담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상담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대기자들이 있는 상담소들도 많아지고 있다. 잘 훈련된 상담전문가라 할지라도 매일 매일 많은 내담자들을 만나게 되면 누적되는 2차 트라우마가 점점 더 커지게 될 것이다. 마냥 기다려야하는 내담자가 안타까워서 무리하게 상담을 하게된다면 상담전문가는 2차 트라우마 누적이라는 더 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수련생을 두고 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있다면, 본인 뿐만 아니라 수련생들도 2차 트라우마를 잘 관리할 수 있도록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서로 돕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2차 트라우마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는 전문가 분들도 계시겠지만, 필자와 같이 잘 모르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어 2차 트라우마에 대한 짧은 글을 써보았다. 모두 건승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