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년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대학생인 아들과 딸이 사이가 안 좋아서 서로 말도 안하며 지낸지가 일 년이 넘어간다며 속상한 마음을 하소연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딱 둘뿐인 형제가 어떻게 서로 말도 안하고 지낼 수 있는지 참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왜냐하면 당시 나에게도 대학생인 딸과 아들이 있었는데 그 둘은 어려서는 많이 싸웠지만 커가면서 점점 싸움은 줄고 오히려 서로 고민도 나누며 서로 의지하는 사이가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이 동맹이라도 맺은 것처럼 부모가 허락치 않거나 야단치려할 때는 서로가 나서서 변호자가 되어주면서 도움을 주려고 하는 모습이 흐뭇하기도 하고 안심도 됐었다.

과거 세대에는 형제수가 지금보다 평균적으로 더 많았다. 나도 오형제 중의 둘째였는데 생각해보면 형제간에 관계보다는 친구들과의 관계가 더 많았고 형제간에 그렇게 친밀하게 지내지는 않았다고 기억된다. 각자가 출가한 이후에는 더욱 각자의 삶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 원가족을 나무로 그려보라고 하는 프로그램에서 내가 떠올린 이미지는 소나무였다. 각자의 삶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지만 어려움이나 기쁜 일이 있을 때는 함께 돕기도 하고 축하도 하며 무엇보다 부모님을 중심으로 위하는 마음이 깊게 있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소나무는 가지들이 독립적으로 잎을 형성하지만 중심기둥에는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가족은 각자 독립적이지만 그래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여 부모님을 제일 위의 가지에 그리고 형제 수 만큼 옆가지를 그렸었다.

그런데 요즘은 형제가 둘뿐인 경우가 많은데 그 둘의 형제체계가 형성되지 않은 경우를 생각보다 자주 보게 된다. 형제간 말을 안 할뿐 아니라 서로를 뿌리 깊게 미워하고 부모가 화해시키려 할수록 더욱 멀어지는 것이다. 심지어는 학령전기의 어린시절부터 서로가 경쟁하고 부모쟁탈전을 벌이며 싸우고 미워하기만 할뿐 둘이 서로 돌보고 양보하지도,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다가 협상을 하지도, 서로를 따르며 즐겁게 놀기도 못하는 경우들을 본다. 이러한 가정들을 살펴보면 부모들이 첫아이에게는 맏이로서의 부담감을 주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동생은 동생이라는 것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하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들 각자에게 잘해주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두 형제는 부모가 누구를 더 사랑하는지, 부모의 시선이 누구에게 더 많이 가 있는지에만 집중하며 끊임없이 경쟁하고 부모 쟁탈전을 벌이게 되고 그에 부응하려고 애쓰던 부모는 기진하게 되는 것이다. 즉 부모는 지치고 자녀는 불만족하며 자녀간에는 서로 금을 긋고 끊임없이 서로 도발하는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에서 미래의 좌우명을 가져온다. 가부장적이면서 가난하였던 과거에는 가족과 형제들을 위해 끊임없이 희생했던 많은 맏이들과 새 신발 한번 신어보지 못하고 존재감 없이 억눌렸었던 많은 동생들이 있었다. 과거의 아픔을 딛고 자라온 부모가 자신과 같은 아픔을 자녀에게 주지 않겠다는 마음에서 가지는 좌우명중의 하나가 맏이라고 희생하게해서는 안된다와 동생이라고 억눌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변증법에 의하면 정반합의 법칙이 있다. 과거의 경험에 반하여 만들어진 위의 좌우명도 이제는 합으로 나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금 자녀들에게서는 형제간에 돌봄이나 순종보다는 자기실현과 자기주장이 더욱 친숙한 정서가 된 듯 보여서다. 이제는 자기실현과 주장에 돌봄과 순종이 함께해야 우리 자녀들의 능력이 배가되고 행복을 누리게 되리라 생각된다.

과거 배를 곯던 시대에서 이제는 3만불 국민소득의 나라가 된 것과 발맞추어 부모역할도 자녀가 억울함을 당하거나 고생할 것을 염려하는 수비의 자세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자녀는 자신의 삶을 영위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돕는 세상에 기여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적극적인 자세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맏이가 책임을 뒤집어쓰며 희생을 강요당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러나 맏이가 맏이로서의 역할을 할 때 책임감과 리더십, 그리고 그에 따르는 능력이 형성되며 맏이로서의 강점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형제순위의 특성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순리를 따라서 맏이에게 맏이의 역할을 맡겨서 동생을 돌보게 하고 그에 대한 감사와 인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아이는 동생하나만 돌보는 것이 아니라 더욱 많은 사람을 돌볼 수 있는 능력의 사람이 될 것이라 꿈을 꾸며 큰애에게 나타나는 돌봄의 능력을 감탄하며 바라보는 것이다.

동생은 형에게 억울하게 눌리고 당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형을 따를 줄도 알고 때로는 자기주장과 협상도 하며 도전정신과 유연성 창의성 등을 발휘하고 이를 토대로 자신의 세계를 개척해나가는 모습을 감탄하며 바라보는 것이다. 이렇게 형제가 서로 돌보고 협상하고 놀고 관계할 줄 알게 되면 학교에 가고 직장과 세상에 나가도 멋지게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고 부모는 그들로 부터 존경과 돌봄도 받게 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혹여 형제가 싸울 때마다 동생이 당할까봐 혹은 언니가 당할까봐 염려되어서, 그도 아니면 부모 스스로가 자녀의 싸움을 견디지 못해서 달려가 중재하는 부모가 있다. 늘 마음에 불안과 걱정이 있어서 노심초사 애쓰고 있다면, 만약 내가 그런 부모라면 좀 더 자녀들을 믿고 그들이 해결하며 관계를 형성해가도록 기다려주기를 제안해본다. 형에게는 동생을 부탁하고 동생에게는 형을 부탁하고 가능한 끼어들지 않고 형제체계가 견고히 세워지도록 돕는 부모가 더욱 좋은 부모임을 강조해주고 싶다.

이렇게 형제체계를 잘 세우기위해서는 먼저 부부가 친밀하고 협조적인 관계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사람에게는 끊임없이 자기가 최고로 중요한 존재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자녀는 엄마에게서 자신이 가장 중요한 존재로 있고 싶어한다. 그러나 엄마에게 아빠가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며 그 자리를 내어줄 때 자신의 세상을 세워가며 형제와 협력하게 되고 나아가 자신의 짝을 찾고 자녀를 낳아 새로운 가족체계를 형성하며 가장 소중한 사람을 세워나가는 위대한 일을 하여나가는 것 같다.

나도 이제 할머니가 되었다. 세 명의 손주가 있다. 이들을 바라보며 그동안 배운 심리학을 실제 눈으로 보고 경험하며 감탄한다.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동생들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하는 첫손녀. 그러면서도 두 남동생을 데리고 신나게 놀기도 하고 동생을 데려간다면 눈물을 흘리며 안 된다고 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장난꾸러기 개구쟁이 둘째, 위의 누나에게 눌리고 아래 동생에게 치여서 억울한 게 많아 때로는 몰래 동생을 쥐어박기도 한다. 겁이 많으면서도 야단맞더라도 하고 싶은 것을 끝까지 해보는 모습 하나하나가 사랑스럽다. 막내는 형들에 비해 자기는 너무 작고 무능하다고 느끼는지 자기는 못한다고 지레 안하면서도 자기 손에 있는 것은 고집스럽게 형들은 만지지도 못하게 하거나 원하는 것이 있을 때 끝까지 떼쓰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서도 형들의 말을 잘 따르기도 하고 무언가 잘한다 싶으면 의젓한 모습으로 자랑스러워 하는 모습들이 다 사랑스럽다.

내가 상담공부를 안했다면 큰애는 왜 저렇게 뻣뻣할까, 둘째는 왜 저렇게 말을 안들을까, 막내는 왜 저렇게 떼쟁이일까 라고 생각하며 못마땅해 했을 텐데 상담공부 덕분에 그들의 행동 속에 보이는 아이의 성품과 특성이 사랑스럽다. 나와는 또 다른 양육태도를 가진 딸의 영향력을 발견하고 딸과 손주들이 성장해 가는 모습을 자랑스럽게 볼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큰 축복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내 가족에서 불안을 기쁨으로 변화시켜 새로운 가족정서를 형성해 가는 것이 나의 큰 기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