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7세 딸아이의 선택적함묵증 증상으로 상담실을 찾은 부부는 상담구조화에서 부부상담의 회기를 가져야 한다는 상담자의 말에 문제는 아이가 있으니, 자신들은 올 필요가 없지 않는 가를 강하게 피력하면서 저항을 하였다. 이들 부모는 아이가 증상을 갖기 6개월 전부터 부부갈등으로 별거를 하고 있었다.”

내가 상담에 입문한 것은 80년대 개인상담이 아니라 가족치료를 접하면서이다. 내담자가 호소하는 증상 즉, 무엇이(what) 문제인가에는 왜(why) 그 문제가 촉발될 수밖에 없는 지에 대한 조망 하에 문제를 사정(assessment)하고 평가하여 목표를 설정하며, 어떻게(how) 치료적 개입을 하고 상담을 진행해야 하는 지의 체계론적 관점 하에 접근하는 가족상담사례에 대한 이러한 개념틀(conceptualization)은 정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따라서 위의 사례처럼 증상을 가진 자녀만 데리고 와서 아이가 달라지게 해달라거나, 상담에 오지 않는 배우자의 문제를 들고 와서 배우자를 고쳐달라고 하는 내담자를 대할 때에는 가족체계 안에서 구성원들의 상호작용(interaction)과 역동(dynamic)과 연쇄반응(sequence)와 과정(process)으로 촉발되는, 가족이 문제 혹은 증상이라고 하는 부분에 대한 탐색과 이해를 시키고, 상담을 구조화한다. 그러므로 증상을 가진 아이보다는 부모를, “나는 되었고, 상대 배우자만 고쳐주면 된다.”고 하는 경우에는 특히 더 부부를 보기 위해 애쓴다. 이러한 출발점을 갖고 시작한 가족상담자로서의 경험의 힘은 지금도 만나는 사례마다 체계적 관점의 개입에 대해서는 변화에 이르는 믿음을 주며, 그 역할을 수행함으로서 얻게 되는 보람도 크게 만든다.

이즈음에서 나는 살바도르 미누친(Salvador Minuchin)박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미누친은 개인 내면의 역동이나 병리보다는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에 더 집중하고, 문제가 있는 아이들만이 아니라 가족들을 만나면서 그러한 가치와 인식을 공유한 몬탈보(Montalvo, B.), 킹(King, C.), 헤일리(Haley, J.) 등의 치료자와 함께 그들 스스로를 가족치료사(family therapist)라 부르게 되었다. 아동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은 가족관계의 맥락 안에서 봐야 한다는 미누친의 주장은 당시 정신의학분야에서는 매우 이단적인 사고이며 배신적인 행위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정신의학계의 분위기 속에서 미누친은 국립정신건강연구소(National Institutes of Mental Health: NIMH)로부터 5년간의 연구지원을 받아 정신의학전공이 아닌 그러나 체계론적 관점을 갖고 가족치료를 행할 수 있는 역량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족치료사 훈련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 결과 약 30여명의 가족치료사가 양성되었고, 이것이 오늘날 정신의학 전공자가 아닌 우리들이 가족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한 단위로서의 가족체계에 합류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족상담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게 한 초석이 되었다. 따라서 필라델피아아동지도소는 이후 필라델피아가족치료훈련센터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나 역시 이곳에 합류하여 동영상이지만 미누친의 가족치료에 대한 열정적 온기를 느낄 수 있었고, 이것이 가능케 한 미누친박사에게 경의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신선하고도 충격적인 가족치료적 관점은 나를 매료시켰고, 가족은 살아있는 관계로 가족이 바뀌었을 때, 개인의 삶도 바뀌게 된다는 점에서 가족을 함께 만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았던 나의 기대와 꿈은 20여년 전 한국에 돌아오면서 크게 좌절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상담장면에서 가족을 만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개점휴업의 상태로 어떻게 하면 가족을 볼 수 있을까 전전긍긍하던 차에 체계론적 관점으로 다세대의 원가족 경험을 살펴보지만, 상담의 개입은 가족 전체를 만나지 않아도, 한 사람의 변화로 체계의 변화를 가능하게 했던 머레이 보웬(Murray Bowen)의 접근은 모니카 맥골드릭(Monica McGoldrick)과 마이클 커어(Michael Kerr)박사를 통해 나에게는 또 다른 신세계를 경험케 하는 것이었다. 즉, 관계를 움직이는 힘, 정서(emotion)와 그것이 표현되는 관계(relation)가 한 단위의 가족에서 어떻게 개인이 자기(self)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부부가족상담에 관심을 가지고 어디 가면 부부가족상담을 받을 수 있는 지 물어보는 내담자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게 된다. 30여년 전에는 가능하지 않았던 일들이 이렇게 부부가족상담자를 찾고, 실제로 부부가족상담을 받으려 하는 것을 볼 때는 그동안 부부가족상담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꾸준히 수련 받고 상담에 임하고 있는 많은 부부가족상담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그들의 열정과 성실성에 박수를 보내며, 나 역시 부부가족상담자로서 초기 가족치료의 거장들이 당시 세상의 질타와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함께 보고자 했던 그들의 믿음과 열정에 누가 되지 않도록 초심의 마음을 또 다시 다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