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석사과정 공부를 하며 일하던 곳에서 어느 날 큰 사례회의가 열렸습니다. 심리학과, 교육학과, 사회복지학과, (당시의) 소비자-아동학과 교수님들과 석박사 학생들 모두가 모이는 자리였습니다. 두 시간 가까이 한 학생에 대한 열띤 토론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그 학생의 주호소문제가 개인심리적인 주제와 심리검사 결과, 상담개입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모두 혼란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어느 교수님의 한 마디가 그 모든 혼동과 질문을 정리해주었습니다.

"이 친구가 가족의 영웅이네요. 가족 대표로 트로피를 혼자 들고 있어!"

정말 이 '영웅'이라는 표현이 그 학생이 괴로워하던 문제나 심리내적 상태, 주변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게 도와주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이르기까지 상담자는 40여회 이 학생을 만나야했으며, 이 한 문장을 듣기 전까지 사례회의 참석자들은 안개 속에서 답답함을 느껴야했습니다.

저는 가족상담이론을 공부한 후, 보웬이나 사티어의 가계도를 상담 초기 2-3회기에 걸쳐 정확히 그릴 수 있다면 우리가 만나는 내담자들이 힘들어하는 문제와 배경, 그리고 해결 방향까지도 어느 정도 큰 윤곽을 비교적 쉽고 정확하게 그릴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얼마나 가슴이 뻥 뚫리고 머리가 맑아졌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지금도 내담자들을 만나며 가계도를 그릴 때 느끼는 선명함과 감동은 늘 상담자로서의 제 삶에 활력을 부여하고 가야할 길을 알려줍니다.

오래 전, 70이 넘으신 할머니가 남편과 관계를 회복하고 싶으시다고 저를 찾으셨습니다. 저는 이렇게 나이가 많으신 분이 변하실까 의구심이 들어 상담시작하기를 주저했습니다. 그런데 워낙 이 할머니가 변화에 대한 의지가 강하시고, 절대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으셔서 상담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내담자 보호를 위해 여러가지 정보는 섞이거나 바뀌어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연세가 많으신상담 초기, 가계도를 통해 알게된 할머니의 가족 내 역할은 '어머니의 위로자'였습니다. 즉 어머니와 심하게 융해가 되어 있었고, 경제적-지적으로 무능한 아버지와 능력자 어머니 사이에서 부모 모두의 마스코트, 어머니에게 기쁨을 주기 위한 영웅 역할을 동시에 하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여쭤보니,

"남편은 저를 속였습니다. 해외유학을 다녀왔다고 해서 유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결혼하였는데, 지방대를 졸업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어요. 그 때 이후 저는 남편을 무시했고, 남편을 대신하여 가정 경제를 일으켜 세웠지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남편에 대한 기대가 무너진 결혼 초기부터 두 분의 관계는 계속 멀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개인상담이론만 알았다면 저는 다면적 인성검사에서 밝혀진 억압과 숨은 분노의 이유를 쉽게 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족상담이론을 함께 알고 있었던 덕분에 할머니-할아버지의 관계를 역사적, 구조적으로 더 빠르고 쉽게 이해하고 개입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의 제 관심사는 개인상담이론과 가족상담이론을 연결시켜 보는 것입니다. 위로와 공감을 제공하는 코헛의 이상화 자기대상은 보웬의 정서적 관계가 너무 소원하거나 밀착되었을 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부모가 정서적으로 너무 멀리 있거나 단절된 자리에 있다면 그 부모에게서 자녀는 위로와 공감을 제공받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만하면 잘 했어!'라고 능력감을 부여하는 코헛의 쌍둥이 자기대상은 영웅 역할을 하던 자녀에게 과대해지고, 사고뭉치 역할을 하는 자녀에게는 과소해지는 것을 봅니다. 삶의 야망, 방향을 제시하는 코헛의 거대 자기대상은 병리적이고 역기능적인 가족 규칙이나 신화를 가진 가족에게서 심하게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저는 심한 경우, '나 때문에 우리 가족이 되는 일이 없다'는 말도 안되는 가족 신화를 마음에 담고 살았던 분을 만나기도 하였습니다. 온 가족의 분노와 불안을 가족들이 이 사람에게 덮어씌운 것이지요. 이 분은 이와같은 불합리한 가족신화를 발견하고 그 배경을 이해한 뒤에야, 생산적이고 소중한 자신만의 삶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부부가족상담학회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도움이 되는 분명한 상담 개념과 방법들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하는 학회 활동을 기다리게 됩니다. 기회 닿는 대로 학회에서 얼굴을 마주 하고 학회원분들을 만나뵙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