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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상담 받는 그 날이 오면

권수영 박사(한국상담학회 부회장)
2017-05-27

권수영 교수

연세대학교 교수

()한국상담학회 부회장

(사)한국상담학회 부부·가족상담학회 회장

 

화창한 일요일 오후 나는 아내와 대학생 딸과 함께 영화 <노무현입니다>를 관람했다. 영화는 내내 노무현 16대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 함께 겪어 온 인간적인 이야기를 풀어갔다. 영화의 시작을 보면, 낙선을 거듭해 온 비주류 정치인의 오뚝이 같은 대역전극을 보여주려는 의도로구나 싶은데, 그런 예상은 금세 빗나가고 만다. (아래 글에는 영화에 대한 아주 약간의 스포가 있을 수 있으니, 영화를 직접 보실 분은 이 점 유의하시길!)

영화가 얼마 지나지 않아 적지 않은 관객은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다. 왜 일까? 불의를 향한 정의감에 불타는 인권변호사 출신, 강직한 대통령의 부릅뜬 눈에 넌지시 내비치는 슬픔과 외로움이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그를 허탈하게 떠나보낸 측근들도 내내 애써 웃어가며 그에 대한 에피소드를 태연하게 소개했지만, 순간순간 진한 상실과 회한의 아픔이 묻어나왔다. 최측근 정치인 중 한 명은 역사 속의 대통령 노무현을 기억할 뿐, 평소에는 애써 인간 노무현을 기억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전했다. 그에게 꼭 얘기해 주고 싶었다. 누군가와는 은밀하게 만나서 인간 노무현에 대해 실컷 이야기하고, 엉엉 소리 내어 울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준비된 전문 상담사를 찾아서라도 꼭 그렇게 하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인터뷰 중에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어린 중학생 노무현이 학비를 내지 못해 담임교사에게 빰을 맞고 학업을 중단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 이야기를 전한 이는 타임머신을 타고 그 때로 돌아가 어린 노무현을 안아주고 싶다는 절절한 마음을 고백했다. 나는 영화 내내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 안에서 빰을 맞고 돌아서는 중학생 노무현이 보였다. 그는 청와대에서 귀빈을 만날 때, 좋아하는 와인 대신 포도주스를 마셨다고 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늘 정신 바짝 차리고 있어야지, 술에 취해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란다. 청와대의 참모마저도 대통령이 실은 술을 잘 마신다는 사실을 퇴임 이후에나 알았다고 했다. 그에게 청와대는 어쩌면 외로운 전쟁터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순간 어느 상담 전문가가 청와대에서 그 외로운 중학생 노무현을 만나 눈 맞춰 주고, 어루만져 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우리 한국상담학회는 다른 여러 단체들과 함께 <전문상담진흥법>의 국민청원을 위한 온라인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상담(counseling) 운동은 애초부터 진단 받은 환자를 위한 정신의학과의 치료행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였다. 사람은 누구나 성장과 변화에 대한 욕구와 자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상담은 과감하게 무력한 환자(patient)라는 단어마저 긍정적인 자원을 가진 고객(client)으로 바꿔 불렀다. 상담의 접근은 내면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그 상처를 피하지 않고 스스로 드러내는 용기를 발휘하게 한다. 어쩌면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공직자들이야말로 이런 자신의 내면의 상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스스로 치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국민을 더 잘 섬기고 주변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에 매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80년대 대학가에서 틈만 나면 불러대는 노래가 있었다. 그 날이 오면/그 날이 오면/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그 아픈 추억도/아 짧았던 내 젊음도/헛된 꿈이 아니었으리/아 피 맺힌 그 기다림도/헛된 꿈이 아니었으리/그 날이 오면... 대통령이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아픔을 안전하게 나눌 수 있는 상담 전문가를 때때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대통령은 국가원수이기 이전에, 내면의 상실과 아픔을 안고 살아온 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주기적으로 상담을 받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국민 누구나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성장의 기회로 삼는 혁명적인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대통령이 먼저 때때로 상담을 받는 그 날이 오면, 모든 공직자들과 직업군인, 그리고 교사들도 자연스럽게 상담을 받고, 온 국민과 학생들이 가장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그 날이 속히 오지 않을까? 이런 나의 꿈이 헛된 꿈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에, 오늘따라 유난히 <그 날이 오면> 노래가 부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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