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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이어도 괜찮아

이선화 초월영성상담학회장
2017-05-01

어린 시절 얌전한 소꿉놀이보다 뛰어다니길 좋아했다. 문을 닫다가 유리창을 깨트리고, 우산을 던지고 받다가 이마에 찍히고, 넘어져서 깨어지고. 실컷 타보지도 내 것으로 가져보지도 못했지만, 얼어붙은 강 위에서 타는 썰매는 지금 생각해도 짜릿하다. 발바닥이 시커메지도록 돌아다니다 집에 오면 어머니의 눈초리는 매섭기만 했다. 많이 혼나다 보니 ‘나는 왜 이럴까?’ 궁금해졌고, ‘나는 무엇인가?’ 탐구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내가 좋은지 싫은지, 이쪽인지 저쪽인지, 나를 명명하는 것도 때로는 혼란스럽다. 나를 무어라 할 것인가? Frued의 관점에서 oedipus시기의 억압된 리비도로 인한 성 역할의 혼미라 할 것인가? 부적절한 행동에 대한 강화로 인한 이상행동의 학습이라 할 것인가? 무어라 명명하기 이전의 것이 있을 텐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자하는 것은 탐구의 본능이다.

상담자가 되어 세월이 지날수록 어려운 내담자를 만난다. 성격장애 진단명을 듣고 막막해하는 내담자들의 과거와 현재가 무난할 리 없다.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내담자들과 함께 하다보면 원점으로 돌아가 경험들을 다시 점검하게 된다. 어린 시절, 영아기, 태아기, 그리고 그 전에 어디에서 왔는지 탐색해본다. 보통은 그러하다. 그런데 어떤 성격장애로도 명명하기 어려운 내담자를 만나면 그런 방법으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래서 흔히 성격장애는 고쳐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 안타까운 견해도 만난다.

현실적으로 내담자들은 교과서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고, 책에서 설명하는 대로 나아가지도 않는다. 어릴 때 썰매 좀 타본 사람은 실전이 이론과 다르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어느 한 편이 되어야 따돌려지지 않을 세상에 불교집안에서 태어나, 카톨릭 유치원, 기독교 중학교와 원불교 고등학교, 기독교 대학교와 석사과정, 힌두교 박사과정을 거쳐 지금은 유대교를 탐구하다보니 모든 곳에서 따돌려지는 외로움과 어느 한 편에 속하고 싶지 않은 고집을 이해할 수 있다. 세상에 드러난 모든 것에서 이상한 시선을 받더라도 본질로 향하는 경험에 살며시 미소 지어지는 기쁨에 이르지 않고서는 계속 혼란스러울 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계의 상태가 그러한다. 그런데 자신의 근원을 보는 눈이 생긴다면 어떨까.

Jung은 초월심리학Transpersonal Psychology을 제4세력 심리학이라 하였다. 초월심리학에서는 인간을 세상에 드러난 몸, 그 내면의 마음, 생명의 영혼, 그리고 영성의 존재로 본다. 영성은 종교의 신앙심과 같고, 드러난 형태는 기독교, 불교, 카톨릭이나, 그 내면에서 추구하는 것은 근원을 향하는 한 가지인 것과 마찬가지로, 내 것은 맞고 네 것은 틀리다는 편견 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히 존재하며 눈에 확연히 드러나지 않으나 존재하는 에너지를 만든다.

초월영성상담의 관점에서 모든 경험 이전의 우리는 경험 없음으로부터 왔다. 영화가 비춰지는 배경 스크린 같은 그 상태를 순수, 공, 무, 본질이라 한다. 카발라에서는 무한의 세계Infinity에서 시작한 모든 존재는 발산의 세계Azilut를 기초로 하여, 창조의 세계Bria, 형성의 세계Yetzirah, 그리고 현현의 세계Assiah로 세상에 드러난다. 겉으로 드러난 모양이 어떠했든 그 본질은 순수, 셀프Self, 아트만Atman, 아찔루트Azilut이다.

우리는 우리의 본질이 무엇인지 잊고 산다. 세상으로 드러난 모습에 동일시하고, 남이 붙여준 이름을 받아들이며, 그 이름의 모양이 나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기 쉽다. 내담자들은 본질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내담자들이 증상과 본질을 동일시하는 동안 나아지기는 어렵다. 물질은 보는 자의 눈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움직이기에, 상담자들도 내담자의 진단명을 붙들고 걱정하는 동안에는 내담자가 변하는 기적 같은 경험이 쉽지 않을 것이다.

변화는 어떤 것도 괜찮다는 수용적 관점에서 시작된다. 상담자의 눈이 드러난 현상에 사로잡히지만 않고 본질을 본다면 내담자의 세포는 다르게 반응할 것이다. 우리가 정한 개념에 너무 일찍 합의하고, 우리가 정한 약속 안에 본질은 잊은 채 꼬리표를 달기보다는 새로운 시각으로 호기심으로 그래도 괜찮다는 수용적 자세로 시작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믿었던 땅이 흔들리고 심지어 꺼지는 불안한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한 줌의 믿음을 움켜쥐고 한 편이 되어 한 편 끼리 성을 쌓아야 안심한다. 한 줌 믿음이 흔들릴수록 한 편들은 많아지고, 땅은 흔들리는데 성은 높아만 간다. 성 쌓기를 멈추고,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내려놓고, 불안을 바라보고, 움켜쥔 손을 풀어놓아 근원을 향하게 한다면 개인적 삶이든, 상담이든, 학회든 좀 더 평화롭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선 화 회 장

한국상담학회 초월영성상담학회

우리들심리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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