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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담전문가"

최승애 집단상담학회장
2017-04-24

가끔은 내가 이러려고 상담자가 되었나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내가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 ‘나는 상담전문가’라는 대답이 떠오르고, 남은 생애를 상담자로서의 삶으로 채울 수 있다는 사실에는 살짝 전율이 느껴지는 감사의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던 시절, 교수님들이 세익스피어, 버지니아 울프, 엘리엇 등 배우는 작품마다, 그 속에 녹아있는 “휴매니티”를 찾으라는 과제를 내주시곤 하였는데, 도대체 작가가 인간을 무엇이라고 여기는지 혹은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참 힘들었다. 중, 고등학교 시절, 저녁 설거지를 왠지 나에게 시킬 것 같은 분위기를 감지하면서도 못 본 척하며 교과서나 소설책을 들고서 책상 쪽으로 가면, 엄마는 “인간이 먼저 되어야지”하며 혀를 차시곤 했는데, 우습게도 그런 날 밤에는 인간이 무엇인가를 한참이나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인간적이지 못한가? 어떻게 살아야 인간적으로 사는 것인가? 잘 산다는 것은 어떠한 삶을 일컫는 것일까? 하는 윤리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에 스스로는 도무지 답을 짐작조차 못하던 나는 심리학 전공의 대학원과정에서 상담이론의 인간관들을 배우면서 내가 살아갈 길을 찾은 것 같은 안도감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 감사기도를 한참이나 드리기도 하였다.

상담 실제를 배우면서 공감과 수용이라는 세계가 황홀하기는 하였지만, 내 입에서는 너무나 낯설어서 [상담연습 교본] 뒷장의 답을 옮겨 적고 무작정 외우고, 그런 표현을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지기만을 기다리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장성한 작은 딸아이가 중학교 입학 후, 첫 중간고사를 치루고 시무룩해 있을 때, “중학교 시험이 어렵기는 어려운가보구나”라고 결혼 전 대학원 시절에 외어둔 수용의 예제 답을 비로소 적용해 볼 만한 상황이라서 한 번 그대로 말을 했을 뿐인데, 아이가 조잘 조잘 자신의 깊은 고민과 미래의 포부까지 신나서 이야기하게 하는 것을 경험하면서 상담공부에 야금야금 들어간 돈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여긴 적도 있었다.

뒤늦게 상담전문가 자격을 받게 되고, 매일 내담자들을 만나는 직장도 가지게 되었는데, 뒤돌아보면 대학원 석박사과정과 별도로 시행되는 각 종 심리검사 교육, 초급부터 고급까지의 세분화된 단계를 거치며 배워가는 다양한 상담이론과 기법 교육 등을 배우러 다니는 시간도 오래 걸렸고, 새벽 기차를 타고 상담교육 장소, 사례 수퍼비젼 모임, 며칠간의 집단상담 등에 참여하기 위해 전국의 낮선 주소지를 찾아다니며 학회의 전문가 자격증 과정을 마치는 날이 과연 올까 의심하던 시간도 상당히 길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정에서 나 자신의 성장과 치유가 이루어져 갔고, 다양한 문제로 힘들어하는 내담자들을 만날 준비가 이루어져 갔기에 지금도 그 시간들은 소중하게만 여겨진다.

이제는 좋은 상담자, 유능한 상담자가 되려는 마음보다 내담자를 위로하고 새로운 삶의 세계로 초대하는 좋은 상담을 하고 싶은 바램이 남아있다. 내담자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해보면, 가깝고도 중요한 주변 사람들을 통해 그가 힘을 얻는 경우가 언제 있었나 싶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가 부모형제를 생각할 때, 힘을 얻기보다는 근심과 걱정 혹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거나, 오히려 그들에게 자신이 힘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이나 기댈 곳이 없어서 느끼는 무력감, 슬픔, 분노의 정서들에 침잠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상담자를 통해 위로받고 힘을 얻어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자유롭고 안녕한 삶을 살아가도록 돕고 싶다. 아마도 내가 힘들 때, 누군가가 나에게 손을 내밀어주어 다시금 우뚝 서서 내 삶을 뚜벅뚜벅 살아낼 수 있었듯이 나도 상담자로서 쓰러질 듯 흔들리는 내담자에게 마음의 손을 내어 줌으로써 그가 그 순간 무너지지 않고 바로 서서 이후 자신만의 길을 당당히 걸어갈 수 있기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기에, 상담전문가의 삶에서 만족과 행복을 누리는 것 같다.

최승애 교수

(사)한국상담학회 집단상담학회장

포항공과대학교 상담교수

최승애심리상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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