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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적 만남을 통한 성장

한재희 심리치료상담학회장
2016-12-12

상담은 성장과 치유를 기본적 목표로 한다. 나 역시 상담전문가로서 무엇이 진정 내담자를 성장하게하고 치유의 경험을 하게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이는 아마도 모든 상담자들이 갖고 있는 고민일 것이다. 따라서 상담자는 변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각자 나름대로의 철학적 기반을 바탕으로 상담적 접근을 시도한다. 어떤 상담자는 현재 문제가 되는 모습에 대한 과거의 뿌리를 탐색하고 그 원인을 통찰하도록 함으로써 내담자의 정신적 성장을 이루도록 돕기도 하고, 또 다른 상담자는 내담자의 진정한 욕구를 파악해 이를 실행하도록 적극적인 계획과 조언을 한다. 그 밖에 과거 억압되어 응어리졌던 내담자의 감정을 풀어주거나 그들의 비합리적인 사고방식을 변화시켜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등 각자에게 적절한 방식을 선택한다. 이 모든 것들이 유용한 방법이고 가치 있는 변화의 통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내담자를 포함한 인간의 변화와 치유, 그리고 자각과 성장을 촉진하는 진정한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나는 이에 대한 질문에 망설임없이 ‘만남’이라 대답하고자 한다.

만남은 분명 우리가 인생 가운데 부여받은 가장 큰 축복일 것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관계적 존재이고, 만남 속에서 존재감과 친밀감을 누릴 수 있기를 갈망하고 있다. 따라서 성숙하고 좋은 만남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인생을 행복하고 풍요롭게 하며, 자연스럽게 성장과 치유를 경험하도록 만든다. 상담도 어느 방식으로든 기본적으로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다. 나는 상담자로서의 경험이 쌓여갈수록 성장과 치유는 어떤 상담적 기술과 개입전략, 또는 분석과 평가보다도 내담자가 상담자와의 관계에서 어떤 관계적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확신한다.

일반적으로 만남을 통한 사람의 관계는 반사적 관계, 적응적 관계, 상호적 관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반사적 관계는 마치 갓 태어난 어린아이들의 모습같이 상대방과의 상호교류는 없고 그저 본능적인 반사작용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선입견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은 관계에 있어서도 그저 반사작용만 있는 경우가 많다. 적응적 관계는 마치 자기중심적인 아이들같이 상대방의 입장은 무시한 채 자기의 생각이나 기분에만 맞추어 줄 것을 요구하는 관계를 말한다. 이들은 주로 타인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어야 하고 자존심을 세우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반면에 상호적 관계는 타인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이해하는 동시에 자신의 마음도 개방하는 인격적인 관계를 의미한다. 대부분의 상담자는 내담자와 상호적 관계를 지향하고자 의도한다.

그러나 실제 상담 현장에서의 관계패턴은 상담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상담자가 내담자의 삶에 대한 관심이나 내담자와의 교류보다는 자동적으로 내담자를 진단하고 평가하는 것에만 익숙해 있다면 내담자는 일종의 반사적 관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상담자의 권위적 조언과 내담자를 상담자적 틀에 의존하게 만든다면 내담자는 결국 적응적 관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마틴 부버가 언급했던 ‘나-그것’의 관계로서 사물적 상대로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담자는 상담자와의 진솔한 상호적 관계를 직접적으로 체험함으로서 자신의 존재감과 자율성을 회복해 나갈 수 있다. 비록 시간이 걸리고 힘이 들어도 인간은 상호적 관계 속에서만 진정한 성숙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틴 부버가 언급했던 ‘나-너’로서 관계를 맺는 것이며 이러한 관계경험을 통해 내담자는 자신의 존재감과 자율성을 회복해 나갈 수 있다.

결국 상담이라는 장(場)은 자신의 삶에 대한 진정한 개방과 함께 상대방을 환대하는 경험이 선행되어야만 비로소 치유적 경험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기위해 상담자는 무엇보다 실존적 만남을 이룰 수 있는 “관계전문가”여야 한다. 이는 얄롬이 언급한 것처럼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치료적 말(therapeutic word)'이 아닌 '치료적 태도(therapeutic attitude)'라는 상담의 기본개념을 잊지 말아야하는 것과 같다. 아마도 내담자에게 오래토록 잔잔한 여운으로 남을 상담자에 대한 기억은 화려한 기법이나 언어가 아닌 투박하고 소박하더라도 진솔한 만남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일깨워주었던 사람일 것이다. 모든 상담자들과 내담자들이 상담의 현장에서 만남의 진정한 가치를 경험하는 축복의 기회를 가지게 되기를 소망해 본다.

한재희 교수

백석대학교 상담대학원 교수

(사)한국상담학회 심리치료상담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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