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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부모교육, 우리가 나서자

권수영 국가자격추진위원장
2016-06-27

미국 유학시절 가족치료를 주로 하는 센터에서 인턴실습을 할 때의 일이다. 처음으로 30대 백인 부부를 배정받아 상담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이 백인 부부는 바로 일주일 전에 이혼을 한 부부였다. 영어실력도 모자란 난 그저 말문이 막혔다. 최소한 1-2주일 전에 왔어야지 이혼 한 뒤에 오면 어쩌란 말인가? 당시 나는 큰 문화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의 수퍼바이저는 이혼 직후 상담을 찾아온 내담자부부를 의아해하는 나를 더 이상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나는 그 때 처음으로 ‘생산적인 이혼’(constructive divorce)라는 개념을 익혔다. 수퍼바이저는 내게 이혼을 무조건 가정을 위한 파괴적인(destructive)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부터 교정하라고 조언했다. 당시 내가 속한 주정부에서는 어린 자녀를 둔 젊은 부부가 합의 이혼할 경우, 부부가 공히 이혼이후상담(post-divorce counseling)을 받도록 법제화되어 있었다. 나는 비로소 가족치료 교과서에 등장하는 ‘희생양’(scapegoat)이라는 표현을 곱씹게 되었다. 엄마와 아빠의 갈등이 심할 경우, 두 사람은 아이를 매개로 줄다리기를 한다. 부부가 갑자기 이혼하여 남남이 될 경우, 아이는 부모 중 한 명에게 심리적으로 충성서약을 해야 한다. 예컨대, 엄마와 함께 살게 되면, 엄마와 함께 아빠를 미워해야 엄마와 연결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린 아이를 위해서라도 이혼을 하는 부부는 원수로 살아서는 안 된다. 좋은 친구로 살아야 건강하게 ‘생산적인 이혼’을 만들어 갈 수 있다. 그제서야 나는 미국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이혼 후에도 쿨하게 친구처럼 지내는 엑스들의 장면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생산적인 관계를 만들어 가기까지 전문 상담사는 보이지 않는 역할을 해왔는지 모른다.

지난 4월 국내 한부모가정 단체에서 기자회견 후 일인시위를 벌인 적이 있다. 서울가정법원에서 이혼을 신청하는 부부에게 아동학대 예방교육을 실시하겠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다. 일인시위를 주도한 단체 대표는 “이러한 계획이 선량한 한부모가정과 재혼가정에 정신적인 고통을 주고 있다”고 밝히고, 이혼부모에 대한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울분을 토했다. 아동학대 예방교육을 받지 않으면 이혼할 수 없도록 강제한다면, 이혼을 앞두고 있는 모든 예비 한부모가족을 폭력 가해자로 몰아가는 태도다. 앞서 내가 경험한 ‘생산적인 이혼’을 위한 선진국의 추후 상담서비스지원과는 참으로 대조적이어서 씁쓸하다. 생산적인 이혼은 부부 스스로 자기 내면을 잘 돌아보고 숨겨진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다행히 최근 보건복지부, 교육부, 여성가족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아동학대예방을 위한 생애주기별 부모교육을 전면 실시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결혼 전부터 자녀 학령기까지 생애주기를 고려하여 부모교육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이다. 이미 언론으로부터는 획일적이고 손쉬운 집합교육으로 진행되는 부모교육의 실효성을 비판 받은 바 있다. 문제는 내용이다. 주로 아동이나 청소년 발달이나 부모자녀 대화법 등의 내용을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부모가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볼 수 있는 내용은 전무하다. 자신의 원가족부터 내려오는 상처, 혹은 부부갈등으로 인해 가정 내 희생양을 만드는 역동에 대한 이해를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심리교육이 절실하다. 부모의 인성이 부족해서 자녀에게 해를 입히는 게 아니다. 심지어 부모 자신이 가정폭력의 피해자여서 너무도 피하고 싶은 폭력인데, 자신도 모르게 본인의 자녀에게 대를 물리고 마는 악순환의 고리를 과연 집합식 교육에서 다루어낼 수 있을까?

최근 필자가 교육부 산하 전국학부모지원센터 강연에서 지역의 부모교육실무자들과 부모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이 급선무라는 말씀을 나눈 적이 있다. 전국의 학부모지원센터에서 부모의 상처를 먼저 돌아보게 하는 부모교육 강사를 찾기에 급급하다. 이미 대한민국에는 이러한 내면의 역동을 읽어낼 수 있는 상담전문인력들이 충분히 확보되어 있다. 가족치료와 상담전문인력들이 각 지역에서 더욱 이 분야에 목소리를 높이고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더 이상 가정 내 억울한 희생양이 생기지 않도록 우리가 나서야 한다.

권수영 국가자격취진위원장

연세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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