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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살피기

손진희 박사(선문대학교 교수)
2020-04-24

 

 

손진희 박사

생애개발상담학회장

선문대학교 교수

 

 근래에 우리 사회 여기저기에서 골 깊은 갈등의 양상을 자주 본다.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지역갈등뿐만 아니라 흙 수저·금 수저로 회자되는 계층 갈등, 젊은 세대와 부모 세대 간의 세대 갈등, 남녀의 성별 갈등에서부터 국가 간의 갈등까지 다양한 갈등의 이슈가 드러나고 있다.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던 올 봄에는 정치적 이념에 따른 격렬한 미움의 에너지 파고가 특히 높았다. 사람 사는 사회이니만큼 사람들 간의 갈등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상대방이 악의 축이나 되는 것처럼 것의 적대적 정서를 쏟는 행태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분석심리학자 융의 그림자개념으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미움과 분노의 심리를 살펴보며 대안을 찾아본다.

 융은 그림자를 우리의 낡은 인격, 인격의 열등한 부분이자 부정적 측면이며 강렬한 저항에 의해서 억압되고 있는 것으로 정의했다. 동시에 모든 사람은 그림자를 가지고 있으며 개인의 삶에서 자신의 특성을 구현하지 못할수록 그림자는 짙어진다라고 하였다. 자신의 특성을 억압하는 사람들은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기 마련이고 수용하지 못한 자신의 특성을 외부에 투사하기 쉽다는 말로 이해된다. 자신의 열등한 측면을 외부에 투사하게 되면 상대방에 대해 싫은감정을 넘어서 절대 악으로 느끼는 격렬한 감정까지도 갖게 된다. 가끔 이런 그림자는 자아존중감이 낮은 사람의 무의식에서는 긍정적인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융 분석가에게 분석을 받을 때의 일이다. 분석 초반에 다양한 모습을 한 여성들이 자주 등장했었다. 노점에서 장사를 하는 아줌마, 어릴 때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우던 친구, 일찍 혼자 되셔서 평생 투사로 사신 할머니, 낯모르는 야비한 여성들이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눈치를 안보고, 직선적이며, 자신의 주장을 노골적으로 하고 심지어 목소리까지 컸다. 분석을 진행하면서 이들 여성들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특성을 알게 되었다. ‘품위가 없다, 억척스럽다, 강인하다, 악바리 같다등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를 잘 못하고, 조금이라도 큰 소리나 싸움이 일 것 같으면 내 주장을 거둬들이고 손해를 보거나 싸움을 말리는 축이었다. ‘손해 보는 삶이 차라리 낫고 우아한 삶이라고 합리화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꿈에 등장했던 모든 여성들이 바로 나였던 것이다. 평생 꾹꾹 누르고 살았던, 그래서 전혀 내 것으로 통합되지 않았던 특성들이 이제는 더 이상 무시를 참지 못하겠다는 냥 나를 봐달라며 아우성을 쳤던 것이다.

 그림자는 저항의 특성을 갖기 때문에 의식화가 쉽지 않다. 심리적 균형이 무너져 노이로제에 걸리거나 자신답지 않은 낯선 행위를 하고서야 놀라서 만나게 된다. 다행히 나는 그림자가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분석을 받게 되었고, 꿈에서 만났던 여성들의 특성을 내 것으로 살아 움직이게 하면서 진정으로 이들과 작별을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인식할수록 그림자 투사를 멈추게 된다. 그림자가 의식화될수록 열등함은 교정할 기회를 얻는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평상 시 이유 없이 타인에 대해 어떤 강렬한 느낌이 드는 경우에는 에너지를 상대방에게 두기보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에 신경을 쓸 일이다. 상대편에 대해 연상되는 특성들을 생각해보고 그 특성들이 나의 열등한 모습은 아닌지 살펴보면서, 내 것으로 통합하는 작업을 조금씩 연습한다면 나의 전체성 실현이 앞당겨질 것이다. 요즘처럼 우리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갈등이 격화되는 시기에는 더욱더 타인을 향한 투사의 감정을 거둬들여 자세히 살펴보는 태도가 필요해 보인다. 개인적 그림자를 통합시키는 과정은 우리가 인격적으로 성장하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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