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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외상에 대한 심리적 응급처치를 넘어서.”

최승애 박사(포항공과대학 상담교수)
2017-11-24

최승애 박사

()한국상담학회 집단상담학회 회장

포항공과대학 상담교수

최승애심리상담센터소장

 

 

포항에 지진이 발생하였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다. 자연 재난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적 재난으로 변형되고 있다. 가옥과 건물 피해로 인한 이재민이 발생하여 대피생활을 하게 되고 도시재건과 복구비용이 엄청난 상황이다. 다행이라면 인명 피해가 많지 않았고 긴급하고 심각한 의료적 처치가 요구되는 상황이 비교적 적었다는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지진 외상(Trauma)을 경험한 사람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에 대한 심리적 지원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란 어떤 충격적인 외상적 사건을 경험하고 난 이후에 그 후유증으로 1개월 이상 다양한 부적응적 증상들이 재경험되는 경우를 말한다. 현재로서는 포항의 지진이 발생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기에, PTSD와 주요 증상이 동등하기는 하지만 증상기간이 3일 이상 1개월 이내로 짧은 경우에 해당되는 급성 스트레스 장애(Acute Stress Disorder: ASD)로 칭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이 시점에서 심리상담 전문가들이 중앙재난안전 대책본부의 재난정신건강지원 인력으로 투입되어 요구받는 주요 활동은 심리적 응급처치((Psychological First Aid)이다. 일반적으로 재난을 겪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특별한 개입이 없이도 정상적으로 기능을 회복한다. 하지만 재난 초기에는 예기치 못한 외상으로 인한 심리적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후유증을 감소시키기 위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즉각적인 요구에 초점을 맞추어 실질적인 문제해결 중심으로 심리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명 존중, 안전, 인권 존중의 정신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심리적 응급처치는 치료적 목적을 갖고 있지 않고 기본적으로 심리학적 접근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기에 상담심리 전문가들의 상담이론이나 상담기술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심리적 응급처치의 주요활동은 다음의 몇 가지 체크리스트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도움을 요청한 피해자의 경우, 일정 간격으로 상태를 재확인 하였는가? 생존자와 첫 대면을 할 때, 자신의 소속, 자격, 이름, 역할, 방문 목적을 명확하게 언급하였는가? 생존자에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지 허락을 구하였는가? 생존자를 식별할 수 있는 정보(성함, 호칭)를 질문하였는가? 현재 상황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였는가? 생존자가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생존자의 기본 인적 사항을 질문하였는가? 필요한 것이 있는지 질문하였는가? 반응이 없는 경우에는 조금 후에 다시 물어볼 수도 있고 필요할 것을 미리 제공할 수도 있다. 현재까지의 상황이 어찌되었는지 질문하였는가?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에게 위로가 될 만한 것(현장에서 필요한 구조관련 정보, 필요시 휴지나 물, 음료 등)을 제공하였는가? 생존자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호응을 하면서 경청하고 있음을 전달하였는가? 생존자의 심정을 잘 헤아리며 공감적으로 반응하였는가? 생존자가 찾는 사람이 있을 경우, 그 사람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성함, 인상착의 등)를 질문하였는가? 생존자에게 현장상황에서 적절하게 행동한 부분(: 신속하게 대피하신 것은~, 도움을 요청한 것은~ ,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준 것은~ )에 대해서 칭찬이나 피드백을 제공하였는가?

 

한동안 충격으로 멍하게 되고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어려운 피해자들에게는 가족이나 친구, 아니면 상담원과 함께 주변을 걸으면서 자신의 움직임을 자각하게 도와주거나, 들숨과 날숨을 최대한 천천히 반복하며 이완을 하거나, 생년월일이 언제인지, 사는 곳이 어디인지, 지금이 몇 월인지, 무슨 요일인지, 지금 눈앞에 보이는 물건 3가지, 지금 들리는 소리 3가지, 지금 내 몸에서 느껴지는 신체 감각 3가지 등을 질문하는 착지(grounding) 기법이 공포와 충격으로 혼란된 내면세계로부터 벗어나 이제는 안전한 사람과 안전한 곳에 있다는 현실감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런데, 심리상담 전문가들은 그 이상의 심리적 지원을 제공할 수 있고, 심리적 고통이 극심하거나 기능저하를 나타내는 피해자들에 대해서 보다 효과적인 심리치료를 실시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학회원들이 재난발생 1개월이 지난 후, PTSD를 경험하는 피해자들에 대해 전문적으로 또한 지속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지진은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와도 달리 전혀 예측을 못하는 상태에서 갑작스레 당할 뿐 아니라 여진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이제 다 지나갔다.’는 안전한 현실을 갖기가 어렵기에 세상이 안전하지 않다혹은 내가 통제할 수 없다.’ 등의 부정적 트라우마적 신념을 내려놓고 안전과 안정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진의 충격적인 사건이 반복적으로 떠오르고, 꿈에 나타나기도 하며, 사건과 관련한 유사한 단서들을 접하게 되면 그 사건이 재발하고 있는 것 같은 행동이나 느낌이 지속되어 심리적, 신체적 고통이 초래되는 침투증상(intrusion symptom)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가득하다. 또한 지진과 관련되는 생각, 느낌, 대화를 피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거나 외상이 회상되는 행동, 장소나 사람을 피하게 되며, 감정이 무뎌지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거리감과 이질감을 느끼고, 미래가 단축된 느낌을 가지며, 중요한 활동에 대한 흥미가 크게 저하되는 회피증상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작은 흔들림이나 이상할 것도 없는 소음에도 소스라치게 놀라고 예민해지며 짜증과 분노를 경험하며 어지럼증과 두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언제든 뛰어나갈 수 있도록 사무실에서 신발을 신고 근무하기도 하며 시간이 걸리는 긴 샤워를 아예 포기하기도 한다. 잠을 아예 못 자거나, 밤새 뒤척이며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지진이 발생했던 때에 어디에 있었느냐, 어땠느냐, 어떻게 피했느냐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원하지 않고 질문하면 짜증을 내거나 무시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집에 직접적인 피해가 없는 경우라도 살고 있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타 지역에 있는 친척집으로 대피하여 직장이나 학교 등을 멀리서 다니거나, 추운 날씨 속에서 의식주의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필요한 물건을 꺼내오기 위해 잠시 집으로 들어갈 때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쉬기 어려운 것 같은 과호흡 증상이나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증상이 나타난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지진 외상사건을 당한 후에 자신, 타인, 세상을 불신하고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거나 공포, 불안, 분노, 자책, 등의 부정적인 정서 상태 등이 나타나는 인지와 감정의 부정적인 변화를 겪는 사람들도 있다. 걱정하는 친척들의 연락이나 지원하기 위해 다가오는 사람들에게조차 그들은 이런 일을 직접 겪어보지 않았기에 내 심정이나 상황을 모를 것이라고 여기며 거리감이나 소외감을 느끼기도 하고, ‘빈 손으로 바닥부터 시작해야 하나하는 염려에 압도되기도 한다. 어린 자녀를 걱정하는 젊은 어머니는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자란 상태라면 좋으련만하고 생각하다가 이럴 줄 알았으면 아이를 낳지 않았어야 하는데라는 지나친 자책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신앙을 가지고 평소 안정된 모습으로 지내던 어떤 사람은 바로 이웃 동네에는 피해가 심각하지만 절대자가 내가 있는 곳은 지켜주셨구나. 하지만 나를 더 이상 지켜주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내가 나를 지켜야 되는데하는 생각에 무기력을 호소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많은 장소에서 내가 사는 곳에 직접적으로 지진피해가 있는 것은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한 일종의 경고야하는 생각에 두려움과 분노를 경험하기도 한다.

 

지진의 외상적 사건은 나 자신의 정체성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등에 영향을 주면서 삶 전체를 변화시키는 일로 다가온다. 더 이상 안전하고 안락함을 누리는 삶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을 것이기에 감사도 많아지겠지만 소중한 것들을 잃는 것에 대한 공포와 상실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스갯소리지만 예술적 분위기를 내고 싶어서 그림을 거실 벽에 기대어 놓는 행위를 다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임시 상담소를 설치하고, 그 곳에서 상담 및 심리 치료적 도움을 제공하고자 하여도, 피해자들은 상담을 받을 정신적 여유가 없이 두문불출하고 있거나 자발적으로 심리적 도움을 청할 여력이 없기 쉽다. 찾아가는 심리적 지원이 필요한 이유를 알겠다. 물론 찾아가도 어떤 사람들은 말을 시키지 마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나를 가만히 좀 놔두길 바란다. 아무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다고 표현하시거나 이런 이야기조차 하지 않고 초점 잃은 눈으로 바라보시기만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물질적, 심리적 지원을 제공하는 사람이나 기관이 주변에 있음을 가까이에서 경험하는 사람들은 내가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다시 안전하다’, ‘살아있기만 하면 먹을 것 입을 것 잠 잘 곳이 제공되고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구나. 살아보자’, ‘상담자와 이야기를 하고나니 멍하던 마음이 깨어나고 내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알겠고 너무 극단적으로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생각이 살아가는 데 별로 좋지 않구나등의 새로운 긍정적 신념을 형성하는데 큰 도움을 받게 됨도 알았다.

 

재난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병리를 가진 사람으로 대해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도움이 필요하지만 무력하고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대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렇다고 누가 섣부르게 희망을 가지세요.” 라는 말을 건네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단지 이 위기를 잘 넘기고 다시 안정을 찾고 새롭게 힘을 내고자하는 희망의 마음이 생성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상담자, 우리가 도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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