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문제로 찾아오는 부부 내담자들에게 만족스러운 상담을 제공하는 일은 마치 지도 한 장을 들고 보물섬을 찾는 일 만큼이나 어렵고 힘든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가 당면했던 문제들을 해결하고 만족스럽게 상담을 종결하고 난 후에 느끼는 보람과 기쁨은 매우 크다. 세월이 지난 다음에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라고 소식을 전해 줄 때 그 기쁨은 배가 된다. 부부상담은 개인상담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면서도 관계적이기 때문에 초기 상담과정에서 조직적이고 전략적인 구조화가 요구되고 객관적인 진단과 평가를 통해 정밀하고 체계적인 맞춤형 상담 계획을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 부부를 효과적으로 돕기 위해서는 부부체계, 가족구조, 가족생활주기, 결혼에 대한 심리적 과제, 원가족 문제, 문제 대처기술, 대인관계 갈등 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이에 맞는 상담 방법을 적용해야 한다. 부부상담을 할 때 부부가 함께 방문하는 경우가 가장 이상적이지만 경험에 의하면 부부 문제로 방문하는 내담자들의 전체 비율로 보았을 때 부부가 함께 방문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대체로 남편들은 아내들보다 상담에 참여하는 것을 더 망설이고, 한쪽 배우자가 상담을 제안하고 상대 배우자가 상담을 꺼리는 것은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비난으로 인해 상대 배우자로부터 평가받는 것을 염려한다든지, 외도한 배우자가 자신의 외도에 대한 이야기를 불편해 한다든지, 폭력적인 배우자가 자신의 나쁜 행동을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한다든지, 한쪽 배우자가 도움을 구하는 것에 압박감이나 위협감을 느낀다든지, 상담에 대하여 불신하거나 혹은 상담 받는 것으로 인해 통제감을 상실할까봐 두려움을 느낀다든지, 집안 문제를 남에게 이야기 하는 것을 어리석다고 생각한다든지, 부부문제는 가족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든지 등이다. 부부상담에서 상대 배우자가 상담을 거부할 경우, 그들은 부부관계에서 분노와 긴장(감정적), 비난(인지적), 언쟁과 회피(행동적) 등의 문제로 고통을 받으며 갈등이 심화되기 때문에 부부가 함께 자발적으로 상담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는 부부의 독특한 특성 및 발달 수준, 문제유형, 상황적 조건 등을 고려하여 전통적인 부부상담의 기술을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상담사의 임상기술에 맞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유연하고 순발력 있게 전략적으로 발휘해야 한다. 배우자가 상담을 거부해서 혼자 찾아오는 경우, 그 내담자는 부부관계로 인해 마음이 더 상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우선 지지하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 그에게 배우자에게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결정하는데 도움을 주어야 하고, 배우자를 상담에 요청할 수 있는지 결정하도록 해야 하며, 배우자에게 상담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하기 위해 필요한 세부 사항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그리고 상담에 배우자를 초대할 때 따르는 위험 요소를 평가해야 하고, 적절한 방법으로 배우자에게 상담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게 역할 연습을 해보도록 도와 줄 필요가 있다. 또한 상담사는 내담자가 허락한다면 배우자에게 전화를 걸어 내담자의 상담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얻기 위해 상담 회기에 참여해 달라고 초정할 수도 있어야 한다. 상담사가 상담을 거부하는 상대 배우자와 접촉할 때는 그들이 상담을 거부할 수 있는 다양한 이유가 자연스러운 감정임을 인식하고, 그들이 갖는 어려움을 이해해 주어야 하며, 그들의 저항 이면에 있는 두려움과 염려를 완화시켜 주어야 한다. 그리고 부부가 함께 참여할 경우 더 빠른 긍정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상담에 참여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기획하고, 문제 상황에 맞는 적절하고 유연한 전략적 기술이 반드시 필요하다. 때로는 한쪽 배우자가 강한 거부감을 보일 경우, 상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찾아오는 배우자하고만 작업을 해야 한다. 양쪽 배우자가 다 참여하는 경우 변화가 더 빠르지만 한 사람하고만 작업을 해도 부부체계가 변화될 수 있다는 점을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험에 의하면 이런 경우에는 상담을 받고 있는 한쪽 배우자가 먼저 부부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과 변화하는 모습을 보일 때 상대 배우자가 상담에 대해 호의적이 되고 상담에 참여할 기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남편의 외도로 별거 중이었던 부부를 상담했던 일이 생각난다. 혼자 상담센터에 방문했던 남편은 “외도로 인해 부부갈등이 심해서 현재 별거 중인데, 술을 마시면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고, 사귀던 여자와 오래 전에 헤어졌는데도 아내가 하루에도 수십 차례 카톡이나 문자로 그 여자에 대해 묻거나 비난하면서 협박하기 때문에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 남편 내담자가 자살의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위기상담을 한 후에 개인상담을 몇 회기 진행하면서 아내가 상담에 참여하도록 요청할 수 있는지, 아내에게 상담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하기 위해 필요한 세부 사항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아내를 상담에 초청할 경우 예상되는 위험 요소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등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남편 내담자가 아내에게 상담에 참여해 달라고 적절하게 요청할 수 있도록 역할 연습을 한 후에 아내에게 함께 상담을 받자고 요청하였음에도 아내는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남편 내담자는 만약에 상담사가 아내에게 전화하여 상담을 권유한다면 더 화를 낼 것이라고 하여 다소 모험적이고 저돌적인 방법으로 전략을 세웠는데, 아내가 남편에게 카톡이나 문자를 보내면 답장을 하지 않도록 하는 전략이었다. 아내가 남편에게 전화해서 “왜 답장을 안 하냐”고 화를 내면 “상담사가 답장하지 말라고 했다.”라고 하도록 합의하였다. 예상했던 것처럼 남편과 통화한 아내는 상담사한테 화가 나서 직접 상담을 예약하였고, 혼자 방문한 아내는 첫 상담에서 마치 싸울 듯한 자세로 필자를 노려보았다. “이렇게 방문하게 해서 미안합니다. 이렇게 찾아오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을 텐데 용기를 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어요. 남편의 외도로 인한 아내의 고통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어서 남편에게 아내를 초청했는데, 오지 않으셔서 이런 방법으로 초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아내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고, 50분 내내 눈물을 흘리며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쉬지 않고 이야기하였다. 아내의 요청에 의해 5회기 개인상담을 진행한 후에 부부상담을 진행하였는데, 아내는 남편을 용서하였고, 부부는 화해하게 되었으며 관계가 회복되어 별거를 종결하였다. 부부상담을 종결하고 몇 개월이 지난 후에 큰 아들이 틱(Tic) 증상이 약간 있는 것 같아서 가족상담을 받고 싶다며 부부가 손을 꼭 잡고 아들과 함께 찾아 왔을 때 우리는 함박웃음을 웃었다. 이처럼 부부상담에서 상대 배우자가 상담을 거부할 때 먼저 방문한 한쪽 배우자로부터 확보한 부부의 기본정보, 독특한 특성, 발달수준, 상황적 조건, 문제유형 등을 고려하여 전통적인 부부상담 기술과 더불어 상담사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적절하고 유연하게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2019-09-11
필자가 처음 상담과 인연을 맺은 것은 자살 예방 상담 자원봉사자 교육을 받았을 때다. 자원봉사활동을 하면서 상담에 보다 깊은 관심을 갖게 되어 유학을 가게 됐다. 전공자 신분으로 만났던 내담자들 중에는 가정폭력과 성폭력 피해자들이 상당 수 있었다. 전공 시험을 보고 수퍼비전을 받는 것도 힘들었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폭력과 학대의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상담실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늘 고통스러웠다. 아직 수련이 부족해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아직 치유되지 않은 내면의 상처가 건드려져서 그럴 것이라고도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증상은 전문가 자격을 취득하고 수백시간의 개인 상담과 수퍼비전을 받은 뒤에도 해결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폭력과 학대의 피해자들을 다수 만나고 났을 때 증상이 나타났기 때문에 명확한 원인을 알 수 있지만, 과거에는 증상이 언제 어떻게 무엇때문에 나타나는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이 증상에 대해 상담시간이나 수퍼비전시간에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필자와 비슷한 증상을 경험했던 동료 상담전문가들 중에는 상담시간을 줄이고 다른 일을 좀 더 하는 사람도 있고, 상담의 세계를 완전히 떠난 사람들도 있다. 상담에 대한 회의감을 갖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인간관계 자체를 회피하는 등 끝이 없는 심리적 소진 상태에 빠지는 경우도 보았다. 필자도 그런 심리적 소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다가 ‘2차 트라우마’라는 개념을 알고 난 뒤에 비로서 필자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트라우마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는데, 이 때에 상담자도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된다. 이것을 ‘2차 트라우마’라고 한다. 물론 내담자가 경험하는 것만큼 큰 트라우마는 아니지만, 그런 내담자가 여러명일 경우 2차 트라우마들은 누적이 된다. 그리고 누적된 2차 트라우마는 적지 않은 파괴력을 갖는데, 내담자의 트라우마와는 속성이 달라서 치료법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 2차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되면 상담자는 소진이되고, 열정을 잃고, 자신감을 잃고, 회의감을 느끼고, 만사가 귀찮고, 피곤함, 절망감, 무능감, 정죄감, 분노와 냉소, 주의 집중 곤란, 과민, 짜증 등을 경험하게 된다. 2차 트라우마는 단시간에 치료가 되는 치료법이 있는 것 같지 않다. 수퍼바이저와 동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하고 심리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자기를 잘 관리할 수 있는 지혜를 배우고 연습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요즘 우리 사회에 상담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상담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대기자들이 있는 상담소들도 많아지고 있다. 잘 훈련된 상담전문가라 할지라도 매일 매일 많은 내담자들을 만나게 되면 누적되는 2차 트라우마가 점점 더 커지게 될 것이다. 마냥 기다려야하는 내담자가 안타까워서 무리하게 상담을 하게된다면 상담전문가는 2차 트라우마 누적이라는 더 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수련생을 두고 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있다면, 본인 뿐만 아니라 수련생들도 2차 트라우마를 잘 관리할 수 있도록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서로 돕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2차 트라우마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는 전문가 분들도 계시겠지만, 필자와 같이 잘 모르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어 2차 트라우마에 대한 짧은 글을 써보았다. 모두 건승하시길!
2019-08-11
십여년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대학생인 아들과 딸이 사이가 안 좋아서 서로 말도 안하며 지낸지가 일 년이 넘어간다며 속상한 마음을 하소연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딱 둘뿐인 형제가 어떻게 서로 말도 안하고 지낼 수 있는지 참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왜냐하면 당시 나에게도 대학생인 딸과 아들이 있었는데 그 둘은 어려서는 많이 싸웠지만 커가면서 점점 싸움은 줄고 오히려 서로 고민도 나누며 서로 의지하는 사이가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이 동맹이라도 맺은 것처럼 부모가 허락치 않거나 야단치려할 때는 서로가 나서서 변호자가 되어주면서 도움을 주려고 하는 모습이 흐뭇하기도 하고 안심도 됐었다. 과거 세대에는 형제수가 지금보다 평균적으로 더 많았다. 나도 오형제 중의 둘째였는데 생각해보면 형제간에 관계보다는 친구들과의 관계가 더 많았고 형제간에 그렇게 친밀하게 지내지는 않았다고 기억된다. 각자가 출가한 이후에는 더욱 각자의 삶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 원가족을 나무로 그려보라고 하는 프로그램에서 내가 떠올린 이미지는 소나무였다. 각자의 삶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지만 어려움이나 기쁜 일이 있을 때는 함께 돕기도 하고 축하도 하며 무엇보다 부모님을 중심으로 위하는 마음이 깊게 있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소나무는 가지들이 독립적으로 잎을 형성하지만 중심기둥에는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가족은 각자 독립적이지만 그래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여 부모님을 제일 위의 가지에 그리고 형제 수 만큼 옆가지를 그렸었다. 그런데 요즘은 형제가 둘뿐인 경우가 많은데 그 둘의 형제체계가 형성되지 않은 경우를 생각보다 자주 보게 된다. 형제간 말을 안 할뿐 아니라 서로를 뿌리 깊게 미워하고 부모가 화해시키려 할수록 더욱 멀어지는 것이다. 심지어는 학령전기의 어린시절부터 서로가 경쟁하고 부모쟁탈전을 벌이며 싸우고 미워하기만 할뿐 둘이 서로 돌보고 양보하지도,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다가 협상을 하지도, 서로를 따르며 즐겁게 놀기도 못하는 경우들을 본다. 이러한 가정들을 살펴보면 부모들이 첫아이에게는 맏이로서의 부담감을 주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동생은 동생이라는 것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하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들 각자에게 잘해주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두 형제는 부모가 누구를 더 사랑하는지, 부모의 시선이 누구에게 더 많이 가 있는지에만 집중하며 끊임없이 경쟁하고 부모 쟁탈전을 벌이게 되고 그에 부응하려고 애쓰던 부모는 기진하게 되는 것이다. 즉 부모는 지치고 자녀는 불만족하며 자녀간에는 서로 금을 긋고 끊임없이 서로 도발하는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에서 미래의 좌우명을 가져온다. 가부장적이면서 가난하였던 과거에는 가족과 형제들을 위해 끊임없이 희생했던 많은 맏이들과 새 신발 한번 신어보지 못하고 존재감 없이 억눌렸었던 많은 동생들이 있었다. 과거의 아픔을 딛고 자라온 부모가 자신과 같은 아픔을 자녀에게 주지 않겠다는 마음에서 가지는 좌우명중의 하나가 맏이라고 희생하게해서는 안된다와 동생이라고 억눌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변증법에 의하면 정반합의 법칙이 있다. 과거의 경험에 반하여 만들어진 위의 좌우명도 이제는 합으로 나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금 자녀들에게서는 형제간에 돌봄이나 순종보다는 자기실현과 자기주장이 더욱 친숙한 정서가 된 듯 보여서다. 이제는 자기실현과 주장에 돌봄과 순종이 함께해야 우리 자녀들의 능력이 배가되고 행복을 누리게 되리라 생각된다. 과거 배를 곯던 시대에서 이제는 3만불 국민소득의 나라가 된 것과 발맞추어 부모역할도 자녀가 억울함을 당하거나 고생할 것을 염려하는 수비의 자세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자녀는 자신의 삶을 영위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돕는 세상에 기여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적극적인 자세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맏이가 책임을 뒤집어쓰며 희생을 강요당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러나 맏이가 맏이로서의 역할을 할 때 책임감과 리더십, 그리고 그에 따르는 능력이 형성되며 맏이로서의 강점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형제순위의 특성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순리를 따라서 맏이에게 맏이의 역할을 맡겨서 동생을 돌보게 하고 그에 대한 감사와 인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아이는 동생하나만 돌보는 것이 아니라 더욱 많은 사람을 돌볼 수 있는 능력의 사람이 될 것이라 꿈을 꾸며 큰애에게 나타나는 돌봄의 능력을 감탄하며 바라보는 것이다. 동생은 형에게 억울하게 눌리고 당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형을 따를 줄도 알고 때로는 자기주장과 협상도 하며 도전정신과 유연성 창의성 등을 발휘하고 이를 토대로 자신의 세계를 개척해나가는 모습을 감탄하며 바라보는 것이다. 이렇게 형제가 서로 돌보고 협상하고 놀고 관계할 줄 알게 되면 학교에 가고 직장과 세상에 나가도 멋지게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고 부모는 그들로 부터 존경과 돌봄도 받게 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혹여 형제가 싸울 때마다 동생이 당할까봐 혹은 언니가 당할까봐 염려되어서, 그도 아니면 부모 스스로가 자녀의 싸움을 견디지 못해서 달려가 중재하는 부모가 있다. 늘 마음에 불안과 걱정이 있어서 노심초사 애쓰고 있다면, 만약 내가 그런 부모라면 좀 더 자녀들을 믿고 그들이 해결하며 관계를 형성해가도록 기다려주기를 제안해본다. 형에게는 동생을 부탁하고 동생에게는 형을 부탁하고 가능한 끼어들지 않고 형제체계가 견고히 세워지도록 돕는 부모가 더욱 좋은 부모임을 강조해주고 싶다. 이렇게 형제체계를 잘 세우기위해서는 먼저 부부가 친밀하고 협조적인 관계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사람에게는 끊임없이 자기가 최고로 중요한 존재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자녀는 엄마에게서 자신이 가장 중요한 존재로 있고 싶어한다. 그러나 엄마에게 아빠가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며 그 자리를 내어줄 때 자신의 세상을 세워가며 형제와 협력하게 되고 나아가 자신의 짝을 찾고 자녀를 낳아 새로운 가족체계를 형성하며 가장 소중한 사람을 세워나가는 위대한 일을 하여나가는 것 같다. 나도 이제 할머니가 되었다. 세 명의 손주가 있다. 이들을 바라보며 그동안 배운 심리학을 실제 눈으로 보고 경험하며 감탄한다.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동생들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하는 첫손녀. 그러면서도 두 남동생을 데리고 신나게 놀기도 하고 동생을 데려간다면 눈물을 흘리며 안 된다고 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장난꾸러기 개구쟁이 둘째, 위의 누나에게 눌리고 아래 동생에게 치여서 억울한 게 많아 때로는 몰래 동생을 쥐어박기도 한다. 겁이 많으면서도 야단맞더라도 하고 싶은 것을 끝까지 해보는 모습 하나하나가 사랑스럽다. 막내는 형들에 비해 자기는 너무 작고 무능하다고 느끼는지 자기는 못한다고 지레 안하면서도 자기 손에 있는 것은 고집스럽게 형들은 만지지도 못하게 하거나 원하는 것이 있을 때 끝까지 떼쓰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서도 형들의 말을 잘 따르기도 하고 무언가 잘한다 싶으면 의젓한 모습으로 자랑스러워 하는 모습들이 다 사랑스럽다. 내가 상담공부를 안했다면 큰애는 왜 저렇게 뻣뻣할까, 둘째는 왜 저렇게 말을 안들을까, 막내는 왜 저렇게 떼쟁이일까 라고 생각하며 못마땅해 했을 텐데 상담공부 덕분에 그들의 행동 속에 보이는 아이의 성품과 특성이 사랑스럽다. 나와는 또 다른 양육태도를 가진 딸의 영향력을 발견하고 딸과 손주들이 성장해 가는 모습을 자랑스럽게 볼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큰 축복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내 가족에서 불안을 기쁨으로 변화시켜 새로운 가족정서를 형성해 가는 것이 나의 큰 기쁨이다.
2019-08-02
집안에 쌓인 먼지를 사회에 나와 털어버리기 때문에 사 회가 오염된다. 가정이 안정되면 사회가 안정되고 국가가 안정된다. 삶의 과정에서 몸에 이상에 생기면 병원에 가서 의사의 치료를 받듯이 부부갈등이나 가족갈등이 있을 때 부 부가족상담사에게 상담을 받아야 한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급속한 변화와 경제성장으로 과거에 비해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으나 사회적 부적응이나 이탈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이와 함께 우리는 언론보도나 이웃을 통해 우울증, 분노조절장애, 스트레스성 공황장애, 조현병 등 심리적ㆍ정신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언론이나 민간에서는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복지 및 상담의 요구와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으며, 사회안전망 구축과 예방적 차원에서 전문상담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현실을 직시한 바람직한 대안으로 보인다. 상담은 내담자의 긍정적 변화와 치유를 가능하게 하며, 병리현상을 예방하는 기능도 하기 때문이다. 상담자와 일반인이 다른 이유는 상담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담자는 상담 전에 어떠한 상담이론과 기법을 적용하든 간에 근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이론적 배경과 이를 적용할 줄 아는 방법론적 근거를 통해 내담자가 기대하는 상담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주어야 한다. 단기상담에서는 내담자의 긍정적 변화가 나타나야 하며, 장기상담에서는 치유를 이끌어 내어야 한다. 이를 위해 상담자는 내담자의 핵심감정 안에 내재되어 있는 말속의 말을 찾고 질문을 잘해야 한다. 내담자가 가지고 있는 성격의 특성은 그가 주로 사용하고 있는 방어기제들을 통해서 알 수 있기 때문에 성격개조를 목적으로 하는 정신분석치료는 곧 방어기제의 재조정, 재분배작업이라 할 수 있다. 부부가족상담에서도 내담자의 역기능적 사고를 순기능적 사고로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그가 주로 사용하는 방어기제를 이해하여야 한다. 필자는 2015년부터 현재까지 법원 협의이혼상담위원으로 위촉되어 상담을 하고 있다. 법원마다 차이는 있으나 필자가 위원으로 있는 법원에서 협의이혼을 하기 위해서는 기초면담을 마친 내담자가 숙려기간 3개월 내에 맞춤형상담, 의사소통 훈련, 심화부모교육 중 1가지를 의무적으로 택하여야 한다. 그 중 맞춤형상담을 원하는 내담자는 4시간 심층상담을 받을 수가 있으며, 1회에 2시간씩 2회 진행하게 된다. 이들의 심리상태는 배우자에 대한 분노, 원망, 배신감 등 심리적ㆍ정서적으로 복합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때에 따라 심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협의이혼 상담을 하면서 상담자로서 되돌아보게 하고 사회적 책임감을 느끼게 한 사례에 대해 나누고자 한다. 여기서 인용한 사례는 믿음과 신뢰가 부족하여 협의이혼을 하기 위해 법원에 찾아온 부부를 대상으로 5회기 상담한 사례이다. 30대 초반의 부부가 협의이혼을 위해 법원상담실에 들어왔다. 26개월의 자녀가 있으며, 1년여 동안 별거 중 이었다. 부부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분위기로 이혼을 원하고 있었다. 협의이혼을 하기위해 법원에 온 이유를 물어보았다. 부부에 의하면 결혼초기에는 관계가 좋았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성격차이로 인해 갈등이 시작되었고 자신이 아는 방법으로 배우자를 사랑하고 이해하고 표현하였다. 이로 인하여 부부싸움을 자주하게 되었으며, 아이 앞에서도 거칠게 싸웠다. 관계개선을 하기위해 노력하였으나 갈등의 골이 더 깊어졌으며, 이제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와 희망이 없어져서, 헤어지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상담자(필자)는 상담 과정 중 당사자의 표면적 모습과는 다르게 내면에 미워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의 양가감정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부부의 역기능적 사고에 영향을 미친 미해결과제와 성장과정을 탐색하기 위해 과거탐색기법과 가계도를 활용하였다. 이와 함께 과제부여 등 다양한 상담기법을 통하여 자각과 통찰이 일어나도록 유도하고, 현실을 직시하게 하여 사고의 전환을 이끌어 내고자 하였다. 상담 초기에 부부는 서로의 행복을 위해 이혼을 원하였으나 상담이 진행되면서 서로에게 의지하고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모습과 심리적ㆍ정서적으로 단절되지 않았음을 나타냈으며 상담목표도 변하게 되었다. 남편은 “분노를 조절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고, 거친 성격을 부드러운 성격으로 변화하고 싶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성격을 바꾸고 싶어요.”라고 하였다. 상담 회기가 지나면서 믿음과 신뢰를 회복하기 시작하여 종결 때에는 재결합의사를 나타내었다. 사례부부는 상담을 받지 않았다면 이혼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로 인한 어두운 그림자(shadow)를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고, 아이의 입장에서는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한쪽 부모와 살게 될 것이며, 감내하기 어려운 트라우마(trauma)를 겪게 될 것이다. 따라서 가정의 안정과 가족구성원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부부가족상담이 제도권 내에서 활성화되어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치유와 건강한 가정 그리고 더불어 사는 행복한 지역 공동체에 이바지하였으면 좋겠다.
2019-06-10
상담현장에서 부부들을 만나다 보면, 비참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사례를 많이 만나게 된다. 이들에게 주로 듣는 이야기는 이렇다. “이런 사람을 만나서 내가 이렇게 고생을 한다고, 이 사람만 안 만났으면 이렇게 비참하지는 않을텐데...” 이들은 모두 불행한 이유를 배우자에게 둔다. 배우자가 바뀌면 우리 가정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배우자가 내가 원하는대로 변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남자/여자 주인공처럼 나의 모든 필요를 내가 원하는 시간이 채워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우리 모두가 잘 알다시피, 이런 부부생활은 환상에 가깝다. 늘 똑같은 마음으로, 늘 마음이 맞는 행복한 한 쌍으로, 늘 멋진 곳을 여행하며, 늘 굿모닝 키스를 하면서 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전에 이런 노래가 한 창 유행했던 적이 있다. “널 사랑하겠어. 언제까지나, 널 사랑하겠어. 지금 이순간처럼” 멋진 말인 것 같지만, 한 편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부부들은 처음 만났던 그 순간처럼 사랑할 수 없다. 그들의 뇌에는 상대가 무조건 좋아 보이게 만드는 그런 호르몬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허니문은 끝이 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서로에 대해서 실망하게 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되고, 결혼생활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결혼생활에서 서로에 대해서 부정적인 정서를 경험하게 된다. 아무리 행복한 부부들이라도 부정적인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는 상담현장에서 부부들을 만나면서 “싸우는” 부부보다 “싸우지 않는” 부부들에 대해서 걱정을 더 많이 한다.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부부들을 더 많이 걱정한다. 필자에게는 결혼을 했는데 싸우지 않는 것이 더 문제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건강한 부부는 싸우지 않는 부부가 아니고,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부부가 아니다. 오히려 잘 싸우는 부부가 건강한 부부이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그 문제를 가지고 대화할 수 있는 부부들이 건강한 부부입니다. 한 연구결과를 보면, 부부의 대화 중에 의견 일치를 보이지 않는 주요한 영역의 69%는 영속적인 문제(perpetual problem)이었다고 한다 (John M. Gottman, “The Marriage Clinic”, p.56). 부부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은 금방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결혼생활을 하면서 싸울만한 문제 하나 없는 부부가 어디에 있을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부부들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위의 연구결과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부부들의 싸우는 문제는 금방 해결되는 문제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의 문제는 결혼 이전부터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문제이고, 자신의 self를 정의하는 핵심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부부치료사들은 부부상담을 하면서 영속적인(perpetual) 문제와 해결할 수 있는(solvable) 문제를 구분해 줄 필요가 있다. 영속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대신에, 부부들이 이 문제들에게 대해서 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만약 부부들이 이러한 대화를 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갈등은 교착상태(gridlocked)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배우자들은 둘 다 상처받았다고 느끼고, 서로를 비난하게 되고, 서로의 영향력을 받기를 거부하게 된다. 그들의 대화와 상호작용 속에는 더 이상 서로를 향한 긍정적인 정서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면, 이런 교착상태에 빠진 남편은 집에서 지내는 시간보다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직장에서 자신의 일에 더 몰두하게 된다. 이런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아내들은 남편이 자신들을 거부했다고 느낀다. 그래서 남편이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도록 잔소리를 하게 되고, 남편은 그런 잔소리를 피해서 더 도망가게 되고, 이러한 교착상태는 결국 서로 간에 정서적인 이탈(disengagement) 상태가 된다. 배우자에게 더 이상 긍정적인 기대가 없어지게 된다. 어떤 부부치료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부부관계 말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좋아지는 것 같으면, 부부관계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여기면 무조건 맞다고. 이런 의미에서 부부치료의 목표는 문제해결이 아니라, 부부들로 하여금 교착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서 영속적인 문제에 대해서 계속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어야 한다. 부부들이 아무리 부정적인 내용이라해도, 그 문제에 대해서 계속해서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서로의 영향력을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특히 남편이), 그들은 얼마든지 건강한 관계를 맺어갈 수 있다. 부부치료사들은 부부들에게 이러한 영속적인 문제들을, 마치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만성적인 무릎통증처럼, 그들의 “관계 문제”를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하도록 격려할 필요가 있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나아지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아니 좀 더 친밀함의 수준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부부들은 이러한 영속적인 문제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고, 그 문제를 최소한으로 관리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 부부들에게 “싸우지 말라”고 말하는 대신에 “잘 싸우라”라고 말해주자.
2019-05-09
꽃피는 봄이 되면 길을 걷다가, 설거지를 하다가도 잘 살고 있을지, 안부가 궁금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첫사랑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내담자 이야기입니다.(내담자 보호를 위해 사례의 내용은 각색되었습니다.) 새 학기를 시작하면서 상담을 신청한 내담자는 학사 경고를 받은 이후로 우울과 불안이 심해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 내담자의 우울은 죄책감에서 기인했는데, 유독 가족의 이야기를 힘들어하고 무언가를 감추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1년 정도 상담을 진행되었을 때, 우연히 내담자의 손목에서 자해의 흔적을 보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내담자는 더운 여름에도 에어콘을 핑계로 긴 옷을 입고 상담에 왔는데, 자해의 흔적이 들킬까봐 그런 것이었습니다. 처음 내담자가 자해를 한 것은 부모님이 이혼하신다는 사실을 들은 직후였는데, 엄마는 “집에 반창고 없으니 내일 양호실에서 치료해”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화가나거나 슬플 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 정도로만 조절하며 손목을 그어왔고, 죽고 싶지만 죽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대답하던 내담자의 무력한 얼굴이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이 사건 이후 내담자는 오랜 시간 굳게 믿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게 털어 놓았습니다. 부모님의 이혼의 이유가 자신이 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말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초등학생이던 내담자를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차례 강간했던 삼촌은 실형을 살게 되었고, 이 일로 인해 부모님의 갈등이 심해지게 됩니다. 부모님은 이러한 가족의 일은 ‘절대 말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가르쳤고, 상담에서도 이 이야기를 다루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성폭행을 당한 것도 자신의 탓이었고, 부모님이 이혼을 한 것도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내담자의 죄책감에 대해 가족 체계 내에서 경험했던 관계적 역동을 성찰하는 것은 상담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내담자의 부모님은 다툴 때마다 내담자를 통해 의사소통을 했고, 그 과정에서 내담자는 부모님의 갈등을 중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자신이 갈등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죄책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한 부모님의 대화 속에서 삼촌과 둘만 있는 상황을 만들었던 것, 처음 당했을 때 빨리 이야기하지 못해서 3년 동안 지속적으로 성폭행은 당한 것도 자신의 잘못이라고 내면화하게 되었고, 학사 경고로 또 다시 가족의 갈등이 시작되면서 죄책감이 극대화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대학 인권센터 성평등상담실에서 인권, 성폭력과 관련된 문제를 상담합니다. 성폭력, 가정폭력은 대표적인 젠더기반폭력이자 인권 침해 사례로, 가족 체계적 접근을 통해 문제의 원인이 당사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 관계와 가족 구조에 있을 수도 있다고 접근하는 것은 피해-가해 구도를 벗어난 상담을 가능하게 합니다. 또한 생태체계론적 접근을 기반으로 가족과 사회체계 간의 상호작용을 성찰하는 것은 피해자를 비난하고, 가해자를 옹호하는 2차 피해의 문화와 내담자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역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대학 내 상담센터와는 달리, 저희 인권과 성평등의 문제로 상담을 찾는 학생들은 보다 실천적인 해결책을 얻기 원합니다. 어떻게 보호받을 수 있으며,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 보호와 대처의 과정 속에서 때로는 사회적 무력감을 경험합니다. 아주 오랜 시간 견고하게 존속되어 온 통념이나 관행, 억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내담자의 선택을 지지할 수 있는 보호 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때때로 그렇게 될 수 있는 변화를 모색하고, 트라우마를 야기하는 사회, 문화적 구조로부터 내담자를 보호하는 것이 상담자의 책무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2018년, 미투 운동을 시작으로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의 경험이 이야기되고, 사회가 그 경험을 경청하는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성폭력 생존의 이야기는 상담실 안에서만 털어놓을 수 있었던 개인적 이야기, 개인적 회복을 넘어 사회의 이야기로, 사회적 변화를 모색하는 움직임이 되었습니다. 라인홀드 니부어는 1932년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에서는 개인의 도덕과 집단의 도덕을 비교하며, 개인의 변화가 사회의 변화로 이어질 수 없다는 점을 이야기합니다. 오히려 비도덕적 문화와 사회구조가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사회의 변화를 위해서는 사회 문화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건강한 가족 구조가 개인의 문제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건강한 사회 구조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우리 삶의 문제는 또 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상담을 통해 내담자가 건강하게 회복되는 것을 도와주는 것은 물론, 또 다른 피해가 생기지 않을 수 있도록 보호와 구제의 방법을 모색함으로써 건강한 사회 구조로의 변화가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상담실에서 경청하고 공감했던 내담자의 이야기에 연대하고, 지지하면서 내담자의 무력한 얼굴에도 어렵게 피어난 웃음이 오래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지켜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9-04-16
필자가 뉴욕 블랜튼필 상담센터에서 임상을 하던 시절이었다. 블랜튼필 상담센터는 미국내에서 일찍이 긍정주의 심리학의 효시라고 알려진 빈센트 필 목사와 정신과의사였던 블랜튼박사가 협력해서 100여년전에 맨하탄 다운타운에 세워진 상담대학원이며 상담센터였다. 그러나 이 센터는 어느날부터 재정적으로 어려워지고 마침내 파산을 하고 말았다. 필자가 임상훈련을 하던 2006년도인가 어느날 상담대학원에 새로운 총장인 데이빗 리밍 박사라는 분이 부임하셨는데 전공이 인류학이었다. 역대 총장들이 모두 상담전공자였는데 왜 인류학 전공자가 센터가 재정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상담센터의 대표로 왔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 들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를 눈치챈 데이빗 리밍 총장은 어느날 임상중인 상담사들을 모두 모아놓고 특강을 시작했다. 강의내용은 상담사 여러분들이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을 때 내담자들이 늘 지니고 있는 이야기는 그들의 삶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것을 상담적으로도 볼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 그 이야기를 인류학적으로 본다면, 나름대로 내담자의 이야기는 생존구조(survival structure)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미 정신분석으로 출발한 상담이 융복합적인 분야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인류학자가 건네주는 내담자의 이야기에 대한 해석은 당시에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다. 필자는 이후 인간의 내면에 대해서 인류학적인 시각에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종교대백과를 쓴 엘리아데는 인간의 근원적인 열망중에 가장 큰 것은 신적인 존재(the sacred)와 하나가 되려는 갈망이라고 했다. 어찌보면 이런 접근은 단순히 종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지닌 내적인 염원을 탐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으며, 융의 말대로 상담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 하더라도, 결국 인간이 초월적 경험(numinous experience)에 이르러야 온전함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오늘도 우리는 끊임없이 내담자를 만나고 있다. 이런 내담자의 문제를 바라보는 다양한 해석과 임상이론이 존재하지만, 무엇보다 인간이 갖고 있는 초월적인 욕구와 갈망을 이해하는 것이 상담의 중요한 주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는 내담자가 상담자를 바라보는 입장은 초월적인 대상을 향한 욕구의 첫출발이라고 볼 수 있다. 내담자가 상담자와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내담자가 자기자신과의 관계회복의 가능성 갖는다. 그래서 보스톤대학의 크리스 슐락 이라고 하는 상담교수는 상담을 충실한 동행(faithful companioning)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내담자와 동행하고 함께 하며 그들의 다양한 욕구와 더불어 초월적 열망까지 바라본다면, 우리의 상담은 어느 순간 신적인 경지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2019-03-22
존경하는 학회원님께 (사)한국상담학회 부부·가족상담학회 제9대 회장을 맡게 된 숙명여자대학교 장진경 교수입니다. 지난 총회에서 회장으로 선출되어 제9대 부부·가족상담학회를 운영하는 막중한 책임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선임 회장님들과 분과위원장님들 곁을 함께 하면서 그분들의 고민과 그 고민들을 열정과 노력으로 하나씩 해결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러하기에 부부·가족상담학회장이라는 역할은 저에게 무겁지만 성실함과 노력으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합니다. 이에 학회장으로서 2년동안 분과위원장님들 그리고 학회 회원님들과 함께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부부·가족상담학회로써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노력하겠습니다. 부부·가족상담은 체계론적 접근을 기반으로 가족체계 내에서의 관계역동에 초점을 둔 상담입니다. 또한 부부·가족상담은 생태체계론적 접근을 기반으로 가족과 사회체계 간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에 모학회 및 분과학회, 그리고 상담관련 기관들과의 상호협력을 통해 부부·가족상담으로써의 특수성, 차별성을 확립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둘째, 부부·가족상담사의 사회적 공신력 강화 및 안정적 지위확보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부부·가족상담사는 다양화되어가는 가족 및 사회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고자 묵묵히 상담현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전문성과 헌신에도 불구하고 상담사의 전문성과 사회적 기여에 대한 공감대 형성은 아직 미흡한 실정입니다. 이에 부부·가족상담학회는 정부 각 기관, 기업, 그리고 타관련학회와의 연대를 통해 부부가〮족상담사의 전문성과 역할에 대해 홍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전문상담사에 부합하는 안정적 지위가 확보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셋째, 부부·가족상담사로서의 윤리의식을 강화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가족의 문제는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하고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상담현장에서 내담자가족뿐만 아니라 상담사 자신의 보호를 위해 상담윤리를 강화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상담윤리교육의 강화를 통해 부부·가족상담사의 전문적 역량과 사회적 역할을 확고히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년의 임기동안 선임회장님들의 업적에 보탬이 되도록 그리고 학회회원님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제9대 분과위원장님들과 사무국장님을 잘 보필하여 부부·가족상담학회를 운영하도록 하겠습니다. 회원님들의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9년 1월 제 9대 부부·가족상담학회장 장진경
2019-01-04
가족상담은 한 개인의 문제를 한 개인의 병리적인 관점으로 보지 않고, 가족 체계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즉, 가족구성원들간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한 개인에게서 증상이 나타난 것으로 본다. 이러한 가족상담을 효과적으로 만드는 요소 중의 하나가 순환적 질문을 활용하는 것이다. 순환적 질문은 베이슨의 순환적 인과관계와 순환적 의사소통의 개념을 통하여 발전되기 시작하여, 밀란모델에서 임상적 경험을 바탕으로 질문 기법을 발달시켜 나갔으며, 해결중심 접근 모델에서는 관계성 질문 등으로 적용하고 있다. 1. 순환성 베이슨은 모든 생물계가 원시동물부터 사회체계에 이르기까지 순환적인 인과고리의 연결로 구성되었음에 착안하여 순환성이라는 개념으로 인과관계를 설명하고자 하였다. 순환적인 인과관계는 단선적인 인과관계와 비교가 되는 개념이다. 단선적 인과관계 개념은 객관적인 사물의 세상을 설명하는 데에는 유용하다. 누가 무엇을 시작했는지를 찾고자 하는 노력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유기체를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고, 이에 대한 발전적 개념이 순환적 인과관계 개념이다. 순환적 인과관계 개념은 체계에 관여하고 있는 구성원들의 상호작용에서의 일련의 행동과 반응에 의해 체계가 유지된다는 관점을 지닌다. 순환적 인과관계는 원인이 반드시 어떤 결과를 초래한다고 보지 않는다. 인과관계는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역동적이기 때문에 과거의 사건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보지 않는다. 한 사람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그 행동은 또 제삼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식으로 반복되어 결국 최초의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기 때문이다. 2. 순환적 질문 순환적 질문은 내담자로 하여금 관계적 맥락 안에 있는 자신을 보게 하고 또한 다른 가족구성원들의 관점으로도 그 관계적 맥락을 볼 수 있게 한다. 따라서 내담자가 자기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다. 단선적인 질문이 원인을 단순화 시키는데 비하여 순환적 질문은 원인과 결과의 상호관계적 측면에서 문제를 보게 한다. 순환적 질문은 다양한 인간관계와 순환적 의사소통에 초점을 맞춘다. 순환적 질문을 통해 상담자는 문제를 가족체계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인간관계와 복잡한 의사소통 패턴의 결과로 인식하며 결과적으로 내담자를 보다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보게 만든다. 단선적 질문은 증상에 대한 정보만을 제공하는 반면, 순환적 질문은 가족이 내담자의 증상과 문제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하며 이에 따라서 변화를 일으킬 수 있게 만드는 질문이다. 상담자는 체계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하는 순환적 질문을 통하여 내담자의 문제와 갈등에 대한 다차원적인 인간관계와 의사소통 패턴에 대한 이해를 얻게 된다. 즉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게 되고 중립적인 입장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직설적인 질문을 피하고 간접적으로 순환적인 질문을 하게 되면 내담자의 저항을 차단하고 내담자와 가족 문제에 대한 분명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얻게 된다. 근원적인 문제의 해결보다는 문제 관리에 전념하게 된다. 3. 순환적 질문의 적용사례 사례 : 우울증 여동생에 대하여 아버지와 어머니는 치료를 받을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입장이 다르다. 내담자는 부모님의 갈등상황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동생이 우울증 치료를 받게 되어 제일 고생하는 사람은 누구지요?” “어머니요.” “어머니는 여동생을 어떻게 돕고 있나요?” “걔란 한참동안 이야기도 하고 걔를 위해 여러 가지를 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어머니가 여동생을 돕는 방법에 대하여 가장 동의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다니는 정신과 의사 선생님 이예요.”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지요?” “아버지요. 아버지는 여동생이 하자는 대로 하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누가 아버지 의견에 찬성하나요?” “우리 가족들은 모두 여동생이 너무 아기 취급 받는다고 생각해요. 글쎄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할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동의 하셨을 거예요.” “여동생이 우울해지기 시작한 것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인가요, 후인가요?” “아마 돌아가시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던 것 같아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가족들은 지금과 어떻게 다를까요?” “글쎄요. 할머니가 우리와 함께 살지 않았을 테니까 어머니와 할머니가 지금같이 많이 싸우지는 않았을 거예요.” “만약 할머니와 어머니가 자주 싸우지 않았다면 여동생은 어땠을까요?” “글쎄요. 아마 지금같지는 않을 거예요. 그래도 아버지와는 싸울 것 같아요.” “아버지가 당신과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편이라면, 당신에게 어머니와 여동생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말할까요?” 4. 순환적 질문의 효과 상담자가 내담자 가족의 문제를 사정하는 과정에서 가족과 하나가 되는 것처럼 순수한 호기심을 가지고 순환적 질문을 한다면 가족들은 그들의 곤경에 대하여 새롭게 이해하는 분위기를 느끼게 되며, 신뢰관계 형성이 수월해진다. 따라서 내담자 가족들이 저항없이 가족의 문제를 드러낼 수 있어서 가족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사정할 수 있게 되어 상담의 초기 단계를 성공적으로 진행해 갈 수 있다.
2018-10-13
뉴욕에서 정신분석 훈련을 받을 당시, 결혼 후 미국에 이민 온 한 한국 여성이 나를 찾아왔다. 가족의 빚을 청산하기 위해 고된 삶을 살았고 은퇴할 무렵이 되어서 상담을 받으러 왔다. 남편과 함께 미국에 이민을 왔을 때는 부푼 기대와 꿈을 안고 있었다. 남편은 미국에서 이름만 대면 모두가 다 아는 직장에 고용이 되었고 매달 직장에서 받는 월급으로 미국에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남편은 욕심을 냈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세탁소를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가장 좋은 고가의 세탁기계를 구입했고 부푼 기대와 꿈을 안고 세탁소를 경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는 달리 세탁소의 경영은 어려웠고 결국 세탁소는 큰 부채를 안고 문을 닫게 되었다. 변호사는 그 여성에게 이혼할 것을 충고해 주었다. 남편의 빚을 지고 살게 되면 평생 고통 속에 살게 될 것이라고 그 변호사는 그녀에게 말해 주었다. 하지만, 그 부인은 자신의 남편을 쉽게 내칠 수 없었다.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그녀는 미국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간호학과를 졸업한 그녀는 미국 병원에서 허드레 일을 하면서 조금씩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정신병동에서 일을 할 때는 온갖 수모를 경험하기도 했다. 분열증을 앓고 있는 환자가 병실 복도에 흘린 배변을 치워야 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경험할 수 있는 고통스런 일들을 감내하며 빚을 갚기 시작했던 그녀는 어느 덧 환갑이 훌쩍 넘어 버렸고, 세탁소 파산으로 인해 생겨난 빚을 거의 다 갚게 되었다. 그렇게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정신없이 살아온 탓에 그녀는 다른 의미에서 가족을 돌보기 어려웠다. 그녀는 지난 이십여 년의 세월을 빚을 갚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긴장과 불안으로 인해 자녀들을 안정적으로 돌보지 못했다. 그녀는 가족에 대한 죄책감, 지난 세월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을 느끼며, 상담을 받기 위해 필자를 찾아왔다. 뉴저지 주에서 뉴욕 맨하튼까지 기차를 타고 매주 빠짐없이 두 시간의 시간을 들여 필자에게 상담을 받기 위해 왔다. 어느 날, 그녀는 흥분된 기분으로 상담실을 걸어 들어왔다. 필자는 마치 그녀가 20대의 소녀가 된 듯 느껴졌다. 때는 4월 무렵이었다. 그녀는 상담실에 들어오면서 들뜬 기분으로 이렇게 이야기했다. “뉴저지에서 기차를 타고 오는데 꼭 아버지께 가는 길 같았어요.” 뉴욕으로 오는 기찻길에는 벚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고, 그 기찻길은 벚꽃이 아름답게 피었던 그녀의 유년시절 고향을 연상시켰다. 필자는 그 느낌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입학에 실패했고 재수를 해야만 했다. 결국 어렵게 공부를 해서 그녀는 한국의 최고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대학의 첫 학기, 그녀는 너무 공부하기 싫었고 힘들었다. 그리고 어려운 결심을 하고 시골에 계시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 나 공부하기 싫어. 집에 가고 싶어.” 어려운 살림형편에 겨우 등록금을 마련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반응이 두렵기만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다른 말씀이 없으시고 이렇게 이야기하셨다고 한다. “딸아! 마, 됐다. 내려 오거라. 집에서 좀 쉬어라. 내는 니 하나면 된다.” 그녀는 아버지의 그 한마디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공부의 시름을 잊고 고향으로 한숨에 달려갔다. 그녀가 내려야 할 고향의 역이 가까이 다가왔을 때 기차역에서 그녀를 기다리시는 아버지가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녀는 상담자를 기차역에서 딸을 기다리셨던 아버지로 생각하고 있었다. 먼 이국땅에서 숱한 어려움과 고통을 겪었던 그녀를 기다리시는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안 계셨다. “그 동안 먼 이국 땅에서 빚을 갚느라고 참 수고 많았구나, 참 고생했어”라고 이야기해줄 아버지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고향 역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아버지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 기다림의 역할을 상담자인 필자에게 옮겨 놓았다. 상담이 끝날 무렵 필자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참 수고하셨어요. 이제는 시름을 내려놓고 좀 쉬세요.” 만약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아버지가 하셨을 말을 상담자인 필자는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한없이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마치 고향에서 그녀를 기다렸던 아버지에게 위로의 말을 들은 듯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필자는 상담에서 기다림의 주제를 자주 경험한다. 기다림의 주제는 상담자에게 익숙하다. 상담 시간 늘 지각하며 날 기다리게 한 내담자, 나의 섣부른 해석에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 내담자... 상담자는 기다린다. 상담자는 내담자가 상처받은 마음에서 회복되기를 또한 기다린다. 문제를 가진 부부와 가족이 그 문제를 인식하고 아름답게 가족을 가꿔갈 수 있기를 상담자는 기다린다. 우리 생각처럼 인생이 흘러가지 못할 때가 있다. 우리의 생각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못한다. 우리의 자녀들은 우리의 기대와 생각에서 어긋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기다려야 한다. 그 기다림과 인내가 변화를 일으키며 생명력을 불러일으킨다. 상담자인 필자는 그렇게 오늘도 기다리고 기다린다.
2018-03-20
다사다난했던 2017년이 막을 내리고, 무술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매년 한 해를 마무리할 때면, ‘다사다난’이라는 말을 즐겨 쓰게 되지만, 유난히 작년 한해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많았던 한 해였습니다. 상담계에도 역사상 최초의 사업과 실적이 있는 한 해였기에, 작년 한 해 우리 학회가 진행한 사업들에 대한 간략한 보고를 겸하여 새해 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작년 3월 모학회인 한국상담학회가 소속되어 있는 (사)한국상담진흥협회가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 발주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심리상담" 사업에 선정되어, 1차 사업이 3월부터 9월까지 진행되었습니다. 대상자가 전국에 걸쳐 1,100여명에 이르렀고, 그 중 절반 이상이 실지로 상담을 받았습니다. 우리 분과학회 소속 상담사들도 이 사업에 지원하셔서, 성인과 가족상담을 제공했습니다. 긍정적인 성과가 도출되면서 연이어 작년 11월부터 올 해 2월까지 2차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정부부처가 발주한 전국 단위 사업에 의료나 복지 전문가가 아닌 상담전문가가 독자적으로 주관기관으로 참여한 역사상 첫 번째 사업으로 기록될 것 같습니다. 적은 상담비용에도 헌신적으로 애써주신 모든 학회원 여러분께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이와 더불어 우리 학회는 공적 영역에서 부부·가족상담 분야의 사회적 위상을 제고하기 위하여 한국가족치료학회와 합심하여 노력해 왔습니다. 그 중 10년 만에 개정되는 한국표준직업분류에 드디어 상담 전문가가 최초로 독자적으로 표기되었는데, 추진과정에서 우리 학회와 한국가족치료학회 학회원들이 통계청에 의견을 적극 개진하는 등 최선을 다했습니다. 지난 해 7월 3일 제7차 한국표준직업분류가 개정ㆍ고시되었습니다(통계청 고시 2017-191호). 여기에서 상담 관련 직업은 대분류 '2.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 아래에 중분류 '24. 보건ㆍ사회복지 및 종교 관련직'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6차 분류에서 세세분류 '24741. 청소년 지도사 및 상담 전문가'로 분류되어 있던 것이, 제7차 분류에서는 세분류 '2474. 상담 전문가(Counseling Specialists)'로 상향 분류되었습니다. 또한 직업 예시에는 다양한 상담 관련 직군이 표기되었는데, 여기에는 '가족 상담사'가 맨 먼저 명기되어 있습니다. 향후 가족상담사를 비롯한 다양한 상담 관련 직군이 세세분류로 명시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 해 8월 8일에는 상담분야 25개 단체가 국회에서 모여 8월 8일을 제1회 '상담의 날'로 선포하였습니다. 올해에는 좀 더 국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문화행사로 준비하고, 3년이 지난 후에는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상담의 날' 제정을 요청하는 절차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련의 행사들이 상담에 대한 대국민 인식개선에 작은 보탬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2018년에도 우리 학회는 모든 학회원 여러분과 함께 더욱 풍성한 결실을 맺는 한 해가 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회원 여러분들께서도 우리 부부·가족상담학회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주시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8-01-01
어느새 11월. 오늘 이 비가 그치면 겨울이 성큼 다가올 것이라고들 했다. 11월이 되면 생각나는 분이 있다. 김 할머니! 할머니는 내가 미국에 있을 때 만난 분이다. 김 할머니는 평생 두 가지 소원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글을 읽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대통령 선거 날에 투표하는 것이었다. 이제 할머니는 적어도 당신의 이름 석 자를 직접 쓰시며 사인(sign)을 하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오바마가 처음으로 대통령 되던 날! 그날은 가을 단풍이 한창인 날이었다. 글을 읽지 못해 시민권 공부도 할 수 없었던 할머니에게는 당연히 투표권이 없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평생소원인 대통령(선거) 투표 한 번을 하시겠다고 무작정 내게 함께 가자고 하셨다. 두세 번 설득해 보았지만 결국 포기하고 그저 아름다운 가을 길을 함께 걸어 보자는 마음으로 투표장에 간 적이 있다. 길을 걷는 동안 혹여 마음을 돌리시려나 했지만 할머니의 걸음은 더욱 힘차고 빨라졌다. 막상 투표장에 가니 과연 이 난관을 어찌 돌파할까 막막하기만 했다. 일단 신분확인 하는 곳에 가서 할머니의 소원을 설명했다. 그러자 선거관리인은 활짝 웃으며 투표인 명부에서 있지도 않은 할머니 이름을 찾는 척하고 “미세스 김, 여기 확인했습니다. 들어가시지요!” 했다. 그 다음 단계에 가서도 같은 설명을 하고 넘어갔다. 그러자 기적같이 어린이들을 위한 모의 투표소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의 투표소에 있던 자원 봉사자들 역시 격려와 응원을 보내 주어서 나와 할머니는 무사히 투표를 마치고 나올 수 있었다. “I vote” 스티커를 자랑스럽게 붙이고 나온 김 할머니. 할머니와 나는 가을 햇살에 유난히도 반짝이던 단풍 빛 길을 되돌아 왔다. 11월이 되고 기온이 내려가면 불우이웃 돕기 캠페인이 벌어진다. 연말에만 반짝하고 불우이웃을 생각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했지만 연말마저도 생각할 여력 없이 떠밀려 사는 것 같은 세상이기도 하다. 그 해에도 내가 일하던 기관에서는 불우 이웃 돕기 동전모금(Penny Drive)에 나섰다. 우리에게는 집에 굴러다니는 동전, 특히 일전짜리 페니라도 모으면 십시일반, 불우 이웃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을 모았다. 사무실에는 동전 모이는 정도를 누구나 볼 수 있게 큼지막한 유리병이 준비되었다. “주르륵 주르륵..” 동전 쏟는 소리가 경쾌하게 이어지더니 며칠 못가 또 다른 병을 준비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김 할머니가 작은 손가방을 무겁게 들고 오셨다. “이것이 뭔지 맞추어 보시겠소?” “음~ 무거워 보이는데요. 혹시 동전 모으신 거예요?” “맞았어. 동전이야. 동전 모은다면서 잘 되가시우?” “네 잘 되갑니다. 집에서 굴러다니는 동전을 모아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을 돕자고 들 하셨지요.” 나는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잠깐! 지금 집에 굴러다니는 돈이라고 했수?” “네~ 우리에게는 별 필요 없지만 이런 것도 모이면 불우이웃을 돕는데 쓰일 수 있지요.” 가방 속의 할머니의 동전이 내게 힘을 더하는 것 같았다. 순간, 할머니는 언성을 높이셨다. “난 그렇게 못하오. 그 사람들도 하나님의 자녀들이오. 어찌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돈으로 좋은 일을 한단 말이오?” 감을 잡지 못해 어리둥절한 나는 어느 샌가 눈물로 젖은 할머니의 모습에 더욱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 “좋은 일을 하는 데는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오!” 할머니가 내민 손가방에는 방금 은행에서 바꾸어 오신 일전짜리 페니 두루마기 20개가 들어 있었다. 로저스는 상담사의 자질에서 공감, 존중, 진솔을 외쳤다. 물론 김 할머니는 프로이드도 모르고 로저스도 모르신다. 하지만 그 어떤 조건이나 형편도 인간의 존엄성에는 태클 걸 수 없음을 선포하신 분이시다. 사람은 변하기 힘들다고 하지만 진심을 공감하고 존중할 때 기적은 일어난다. 삶의 문제에 지쳐서 상담실을 찾은 내담자들, 상담자로서 나는 그들의 원가족을 분석하고 성격을 분석하며 문제의 원인을 찾아가고 역기능에 방점을 찍곤 한다. 하지만 이때 자칫하면 문제만 보다가 내담자를 향해 “굴러다니는 동전”의 자세를 취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야겠다. 내담자의 아픔을 공감하고, 고통과 싸우는 그들의 모습을 존중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함께 걸어가고 싶은 11월이다.
2017-11-10
그동안 부부가족상담 수련감독으로 수퍼비전을 하면서 “문제가 너무 복잡하고 부부상담, 가족상담이 너무 어려워요”라는 말을 상담자들에게 종종 듣고 있고, 가계도를 자세히 그려놓고도 사례개념화를 잘 하지 못해서 아쉬운 결과를 보이는 경우를 본다. 그럴 때마다 수련감독자로서 어떤 도움을 줘야 할지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효과적인 부부가족상담을 하려면 부부가족상담자로서 정체성과 상담자로서 태도, 상담대화기술, 문제이해 및 사례개념화, 상담계획과 목표 설정, 개입기술, 자신과 내담자 알아차리기 등이 필요하다. 이중 부부가족상담자로서 정체성을 갖고 문제이해 및 사례개념화 작업을 잘하는 방법에 관한 평소 생각을 피력하고자 한다. 부부가족상담은 부부나 가족을 대상으로 상담한다는 의미를 넘어서 부부, 가족체계로부터 형성되는 관계적 맥락으로 인간과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 개인상담과 차별화되는 점이다. 부부가족상담자는 인간의 행동이 상호작용의 결과로 만들어진다고 믿고 부부갈등과 결혼생활문제, 세대간 갈등과 가족관계문제, 개인의 행동문제, 정신건강문제를 체계론적 관점에서 사정하여 그들의 상호작용 패턴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이해하며 이를 변화시키는데 초점을 둔다. 부부상담과 가족상담은 공통적으로 체계구조와 상호작용 패턴, 다세대전수, 생활주기와 발달과제, 내외적 스트레스, 대처방식과 역할기능 등을 다루고 있고, 실무에서 한 가지 개입모델 만이 아닌 몇 가지 모델을 절충,통합적으로 적용하는 경우가 많아 초보 상담자에게 어렵게 보일 수 있다. 또한 부부상담은 친밀감, 헌신, 성역할과 성차, 복합적 감정 등 민감한 주제를 다루고 관계에서 대립과 불안정성이 있기에 복잡하고 예측이 쉽지 않은 점이 있다. 그에 따라 상담자가 되기 위해 많은 것들을 알고 습득하고 제대로 수련을 받는 데 소요되는 노력과 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상담자로 경험하는 보람과 희열이 크고 개인적 성장을 부산물로 받기에 오늘도 많은 사람이 부부가족상담자로 일하고 훈련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부가족상담에서 문제이해와 사례개념화 작업은 문제와 관련 요인을 파악하여 체계론적 관점으로 해석하고 개입방향을 설정하는 밑그림을 그리는 과정이다. 상담자는 이를 위해 호소문제를 경청하고 관찰과 질문을 통해 기본정보를 수집하면서 문제발생경위와 배경, 문제대처방식 등과 체계구조 및 상호작용 패턴, 다세대전수, 발달과제 등과의 연관성을 파악하여 부부가족을 사정하고 문제를 명료화하여 개입하는 이론적 근거와 가설적 전제를 설정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상담자는 개입방향과 개입방법을 정하여 실제 개입하게 된다. 그러므로 부부가족상담에서 문제이해와 사례개념화 작업은 상담의 방향과 과정,성과 등을 좌우하는 중요한 부분이고 부부가족상담자로서의 정체성과 전문성을 가늠할 수 있는 한 지표가 되기 때문에 상당기간 동안의 수련이 필요하다 하겠다. 그럼 어떻게 하면 부부가족상담자가 부부가족상담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체계론적 관점에서 사례개념화를 잘 할 수 있을 것인가? 먼저 부부가족상담기법을 익히는 것보다 더 우선되어야 할 것은 부부체계와 가족체계에 관한 여러 개념들과 부부문제, 가족문제 유형별 체계적 특성에 관한 지식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보웬 치료모델을 비롯한 사티어 치료모델, 구조적 치료모델, 전략적 치료모델 등 전통적인 가족상담이론의 주요 개념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적용과정과 기법을 익힌다. 이때 배운 이론을 자신에게 적용하여 자신을 이해하고 배운 개입기법을 적용하여 자신을 바꾸려는 노력을 해본다. 그리고 이를 기초로 자신이 선호하는 가족상담모델을 적용하는 전문상담자를 찾아 10회기 이상 내담자 경험을 하면서 자신의 원가족체계를 이해하고 자신의 개인적 특성, 결혼관계, 가족관계에 미친 영향과 미해결과제를 통찰하는 작업과 함께 상담자로서 강점과 보완해야 점을 통찰하여 자신을 바꿔보고 가족체계를 변화시키는 경험을 해본다. 이후 자신이 선호하는 부부가족상담 모델을 한 가지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사례개념화하고 개입하는 방법을 익히고, 또한 부부가족상담학회나 연수기관의 사례발표회, 워크샵에 참석하여 다양한 부부가족문제사례를 이해하고 개입하는 방법을 익힌다. 그 다음에 매회기마다 개인수퍼비전을 받아가며 자신있는 한 가지 부부가족상담모델을 주축으로 다른 모델이나 기법을 절충,통합하는 방법을 적용하여 두 세 사례이상 상담을 진행하고 종결하는 경험을 해본다. 그 다음에는 일정기간 동안 그룹 수퍼비전을 받으면서 다양한 문제사례를 사례개념화하고 개입하는 실무를 익힌다. 이외에도 수련과정에서 상담자로서 태도, 상담대화기술, 상담계획과 목표 설정, 개입기술, 자신과 내담자 알아차리기, 상담자 윤리 등을 훈련받는 것도 중요하다. 이에 더하여 계속 배우는 태도로 상담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과 내담자에게 실천하라고 하는 것들을 행동으로 옮기는 노력을 하면서 아울러 상담을 즐기면서 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는다면 오래 자신감있는 부부가족상담자로 일하면서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도록 나부터 노력하고 수련과정에 있는 상담자들과 미래 수퍼바이저들에게 전문성과 인품에서 좋은 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2017-10-10
바야흐로 오늘날은 전문가 시대이다.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사람이 전통적인 지배계급을 대신하여 신 권력층으로 부상했다. 상담 분야도 예외는 아닌 듯 하다. 어떤 사람이 상담 분야에서 얼마나 전문성을 가졌는지를 가늠하는 잣대로 활용되는 것이 자격증이다. 자격의 등급은 그 사람의 전문가로서의 자질을 공적으로 인정해주는 간판이 된다. 그런데 가끔 이런 회의론자를 만난다. “자격증이 있다고 꼭 상담 잘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자격증과 상담자로서의 전문성은 일치하지 않는 것일까? 여기서 먼저 상담자로서의 전문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겠다. 상담자 전문성은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는데 하나는 기술/지식에 있어서의 전문성과 다른 하나는 상담자로서의 (윤리성을 포함한) 인간적인 됨됨이로 나타나는 전문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는 상호 관련되어 있지만 반드시 한 가지가 다른 한 가지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전문적 지식과 기술을 잘 갖추었지만 인격적으로는 성숙이 덜 된 사람이 있고, 또 그 반대도 존재한다. 나는 야간에 개설된 특수대학원에서 강의하면서 뒤늦게 가족상담을 공부하러 오는 성숙한 인격들을 만날 때가 있다. (물론, 인생후반부에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이 그 사람의 인품을 보장한다는 말은 아니다^^). 가족상담전공 대학원생들의 가계도분석 과제를 검토하다보면 그 학생들의 삶을 마주할 때가 있다. 마흔, 오십, 예순을 넘기면서도 그분들을 상담공부로 들어오게 만든 이런저런 삶의 여정, 그리고 그 길을 통해 얻게 된 인격적인 깊이와 사랑의 힘이 장착되신 분들. 신기한 것은 그 분들도 시험 과 자격증 앞에서는 너무나 작아지고야 만다는 점이다. 그런 학생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꼭 자격증을 따야하나, 꼭 석사 박사를 해야하나.... 그냥 따뜻한 마음과 넓고 깊은 인격으로 내담자들을 품으면 안되나....시험, 자격증 너무힘들다’. 한편, 상담자로서의 인격적 됨됨이에 자신이 없는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교수 혹은 수련감독이라는 직위 혹은 자격증으로 덧씌워져서 정말 진짜배기 상담자가 되지 못하면 어쩌지?..... 나 이런 수준으로 상담을 가르쳐도 되나, 이렇게 상담해도 되나, 이런 식으로 슈퍼비전을 해도 되나....’ 두 가지 차원의 상담자 전문성 간의 괴리는 개인적으로는 고통이다. 더 나아가 이런 괴리가 극심한 소수의 사람들로 인해 상담전문직 전반에 불명예가 되는 비윤리적 사건들이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이 괴리가 줄어들고 두 가지 전문성이 한 상담자 안에 통합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지난해 본 분과학회 회장이셨던 이정연교수님의 말씀이다. “이론과 기법만으로 무장된 전문가에게는 쉽게 다가서게 되지 않는 법이다. 전문가 자체가 하나의 등불이 되어 문 밖에서 망설이는 언 발을 녹여줄 수 있어야 상담분야에 입문할 수 있다고 본다”(이정연, Long & Young, 2009, 부부상담과 치료, 역자서문). 나는 상담자로서, 그리고 상담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내담자와 후학들에게 겸손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고싶다. 한편, 이제 상담에 입문하신 분들은 인격과 기술이 균형 잡힌 상담자가 되시기를, 자격증을 따는 과정에서 인격이 무너지지 않기를, 더 나아가 ‘자격증 급수’가 높아질수록 더 깊고 겸손한 상담자가 되시기를 소망한다.
2017-09-10
물론 모든 종류의 상담이 다 어렵겠지만 부부가족상담은 정말 어렵습니다. 기존의 성격이론, 행동이론, 발달이론, 상담이론 등은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고, 개인상담과 집단상담을 포함한 다양한 대상과의 상담에 대한 조예도 갖춰야 합니다. 그 모든 것들에 더해서 부부가족상담을 위한 이론과 기법도 추가적으로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실제로 상담을 진행할 때도 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어 공감하고 수용하고 존중하면서 따라가기도 어려운데, 두 사람, 세 사람, 네 사람..... 이 모든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그들의 말을 경청하고 또 말로 하지 않는 부분까지 미루어 짐작하면서 한 시간 혹은 두 시간의 회기를 이끌어 가다보면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혹시 내가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내가 이 상황을 효과적으로 잘 다루고 있나?,’ ‘미쳐 신경을 못 써줘서 상처를 받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고, 회기를 끝내고 가족들을 보내고 나서도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고민은 부부가족상담의 대가들에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의 해결책으로 그들이 제시한 방법은 팀접근이었습니다. 치료팀, 자문팀, 반영팀 등의 형태로 치료자의 노력에 효율성과 효과성을 더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것입니다. 치료팀은 두명 이상의 상담사가 대상 부부나 가족과 함께 상담을 진행하는 방법입니다. 상담을 하면서 혼자서 할 때 놓칠 수 있는 것을 다른 상담사가 보완해서 제시해주기도 하고, 가족구성원들에게 긍정적이고 효과적인 상호작용의 모델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팀워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여 적절하고 조화로운 역할배분이 상담효과의 관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문팀은 다양한 모델에서 많이 활용하는 방법입니다. 상담사는 일방경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수명의 자문팀과 다양한 방식으로 협업을 진행하게 됩니다. 구조적 접근에서는 자문팀이 관찰하고 토론해서 상담사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을 메모나 인터폰으로 전달하거나, 필요한 경우에는 상담사를 호출하여 이야기를 해주기도 한다. 애커만가족치료연구소 출신들의 가족치료사들은 자신들의 자문팀을 Greek Chorus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원래 그릭 코러스는 무대 위의 배우들이 하는 행동에 대해서 말이나 노래로 코멘트를 하는 약 12명 정도로 이루어진 합창단을 말합니다. 그릭 코러스는 무대 배경을 바꿀 시간을 메꾼다거나, 주연들이 쉬거나 다음 장면을 위해 준비할 시간을 준다거나, 배경 설명을 해주는 사람들로서 연극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부부가족상담에서의 자문팀이 바로 이러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상담사와의 협력적으로 일하면서 자문팀은 가족을 지지하거나, 혼란스럽게 하거나, 도전하거나, 직면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물론 모든 상담의 주도권은 상담사가 갖고 있습니다. 해결중심단기가족치료모델에서도 자문팀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데, 두 명정도로 이루어진 자문팀이 일방경 뒤에서 세션 전체를 관찰하고, 상담사와 함께 가족들에게 전달 할 메시지를 작성하고 과제를 도출하는 역할을 합니다. 반영팀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진행이 됩니다. 위의 두 방식은 가족들이 일방경 뒤에 앉아 있는 팀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기는 하지만 그 팀과 상호 작용을 하지는 않습니다. 반영팀을 활용하는 상담사는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우에 반영팀의 구성원들이 가족들에 대해서 관찰하고 느끼는 것에 대해서 서로 토의하는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여줍니다. 가족들은 일방경 뒤의 전문가들이 자신들에 대해서 논의하는 장면을 보면서 객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자신들의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가 있습니다. 또한 가족은 그들이 하는 이야기에 다양한 내용으로 피드백을 줄 수도 있습니다. 반영팀은 이렇게 한 회기 중에도 몇 번씩 상호교류를 하면서 상담을 진행합니다. 팀접근의 교훈은 급진적인 형태의 전략적 접근을 시도한 밀란모델에서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Mara Palazzoli가 밀라노에서 운영하던 가족연구센터에 Luigi Boscolo가 합류하면서 두 사람이 팀으로 작업하기 시작했고, 곧 Guiliana Prata와 Gianfranco Cecchin이 추가로 합류하면서 밀란팀이 완성되었습니다. 밀란팀의 치료과정은 무척 독특합니다. 남녀 한팀은 가족들과 진행하는 치료팀이 다른 남녀한팀은 일방경 뒤에서 관찰팀이 됩니다. 40분 세션 후, 치료팀과 관찰팀이 만나서 회기내용을 토론하고 개입전략을 세웁니다. 그 후 치료팀은 가족에게 돌아가 문제를 재정의하고 역설적 과제를 주고 회기를 마칩니다. 세션은 월 1회씩 10회로 제한하고 1년 내에 상담을 종결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합니다. 밀란팀은 약 10년 정도 활동을 하다가 두 팀(Palazzoli & Parata, Boscolo & Cecchin)으로 나뉘어서 따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부부가족상담이 어려워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혹은 누군가와 같이 세션을 진행하고 싶은 생각이 많이 있었는데, 이 글은 읽고 난 지금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2017-07-10
“최근 7세 딸아이의 선택적함묵증 증상으로 상담실을 찾은 부부는 상담구조화에서 부부상담의 회기를 가져야 한다는 상담자의 말에 문제는 아이가 있으니, 자신들은 올 필요가 없지 않는 가를 강하게 피력하면서 저항을 하였다. 이들 부모는 아이가 증상을 갖기 6개월 전부터 부부갈등으로 별거를 하고 있었다.” 내가 상담에 입문한 것은 80년대 개인상담이 아니라 가족치료를 접하면서이다. 내담자가 호소하는 증상 즉, 무엇이(what) 문제인가에는 왜(why) 그 문제가 촉발될 수밖에 없는 지에 대한 조망 하에 문제를 사정(assessment)하고 평가하여 목표를 설정하며, 어떻게(how) 치료적 개입을 하고 상담을 진행해야 하는 지의 체계론적 관점 하에 접근하는 가족상담사례에 대한 이러한 개념틀(conceptualization)은 정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따라서 위의 사례처럼 증상을 가진 자녀만 데리고 와서 아이가 달라지게 해달라거나, 상담에 오지 않는 배우자의 문제를 들고 와서 배우자를 고쳐달라고 하는 내담자를 대할 때에는 가족체계 안에서 구성원들의 상호작용(interaction)과 역동(dynamic)과 연쇄반응(sequence)와 과정(process)으로 촉발되는, 가족이 문제 혹은 증상이라고 하는 부분에 대한 탐색과 이해를 시키고, 상담을 구조화한다. 그러므로 증상을 가진 아이보다는 부모를, “나는 되었고, 상대 배우자만 고쳐주면 된다.”고 하는 경우에는 특히 더 부부를 보기 위해 애쓴다. 이러한 출발점을 갖고 시작한 가족상담자로서의 경험의 힘은 지금도 만나는 사례마다 체계적 관점의 개입에 대해서는 변화에 이르는 믿음을 주며, 그 역할을 수행함으로서 얻게 되는 보람도 크게 만든다. 이즈음에서 나는 살바도르 미누친(Salvador Minuchin)박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미누친은 개인 내면의 역동이나 병리보다는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에 더 집중하고, 문제가 있는 아이들만이 아니라 가족들을 만나면서 그러한 가치와 인식을 공유한 몬탈보(Montalvo, B.), 킹(King, C.), 헤일리(Haley, J.) 등의 치료자와 함께 그들 스스로를 가족치료사(family therapist)라 부르게 되었다. 아동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은 가족관계의 맥락 안에서 봐야 한다는 미누친의 주장은 당시 정신의학분야에서는 매우 이단적인 사고이며 배신적인 행위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정신의학계의 분위기 속에서 미누친은 국립정신건강연구소(National Institutes of Mental Health: NIMH)로부터 5년간의 연구지원을 받아 정신의학전공이 아닌 그러나 체계론적 관점을 갖고 가족치료를 행할 수 있는 역량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족치료사 훈련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 결과 약 30여명의 가족치료사가 양성되었고, 이것이 오늘날 정신의학 전공자가 아닌 우리들이 가족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한 단위로서의 가족체계에 합류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족상담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게 한 초석이 되었다. 따라서 필라델피아아동지도소는 이후 필라델피아가족치료훈련센터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나 역시 이곳에 합류하여 동영상이지만 미누친의 가족치료에 대한 열정적 온기를 느낄 수 있었고, 이것이 가능케 한 미누친박사에게 경의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신선하고도 충격적인 가족치료적 관점은 나를 매료시켰고, 가족은 살아있는 관계로 가족이 바뀌었을 때, 개인의 삶도 바뀌게 된다는 점에서 가족을 함께 만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았던 나의 기대와 꿈은 20여년 전 한국에 돌아오면서 크게 좌절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상담장면에서 가족을 만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개점휴업의 상태로 어떻게 하면 가족을 볼 수 있을까 전전긍긍하던 차에 체계론적 관점으로 다세대의 원가족 경험을 살펴보지만, 상담의 개입은 가족 전체를 만나지 않아도, 한 사람의 변화로 체계의 변화를 가능하게 했던 머레이 보웬(Murray Bowen)의 접근은 모니카 맥골드릭(Monica McGoldrick)과 마이클 커어(Michael Kerr)박사를 통해 나에게는 또 다른 신세계를 경험케 하는 것이었다. 즉, 관계를 움직이는 힘, 정서(emotion)와 그것이 표현되는 관계(relation)가 한 단위의 가족에서 어떻게 개인이 자기(self)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부부가족상담에 관심을 가지고 어디 가면 부부가족상담을 받을 수 있는 지 물어보는 내담자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게 된다. 30여년 전에는 가능하지 않았던 일들이 이렇게 부부가족상담자를 찾고, 실제로 부부가족상담을 받으려 하는 것을 볼 때는 그동안 부부가족상담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꾸준히 수련 받고 상담에 임하고 있는 많은 부부가족상담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그들의 열정과 성실성에 박수를 보내며, 나 역시 부부가족상담자로서 초기 가족치료의 거장들이 당시 세상의 질타와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함께 보고자 했던 그들의 믿음과 열정에 누가 되지 않도록 초심의 마음을 또 다시 다져본다.
2017-06-10
부부가족상담 분야(MFT)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후에 처음으로 진행했던 특강이 ‘미국 부부가족상담 프로그램의 훈련과정 및 슈퍼비전의 실제’란 제목의 발표였습니다. 부부가족상담학회 슈퍼비젼 연수회에서 슈퍼바이져급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특강이었지요. 미국을 중심으로 한 MFT 분야의 국제적인 현황은 과연 어떤가, 그리고 훈련과정과 슈퍼비젼 실제 면에서 한국의 상황과는 어떻게 다른지에 관한 참가자 분들의 높은 호기심과 열정이 특히 인상에 남았던 특강이었습니다. ‘부부가족상담’적 관점의 독특한 특성이 ‘관계적 맥락’을 확장해서 내담자의 문제를 바라보는 데에 있는 것처럼 국내 부부가족상담 분야의 발전 가능성에 관해서도 그 맥락을 확장하여 국제적인 동향과 함께 전망해 볼 필요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현재 미국의 MFT 분야는 연방 및 주법령에 의해 관리 및 규제되는 주요 정신건강 분야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미국 공중보건서비스에 관한 연방법(The Public Health Service Act)에 따르면, 다섯 가지의 핵심적인 정신건강관련 전문직종의 유형이 명시되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s, 즉 부부가족상담 전문가입니다. (다른 네 가지 유형은 psychiatrists, clinical psychologists, clinical social workers, psychiatric nurse specialists). 현재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는 부부가족상담 전문가 자격증인 LMFT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y)를 주 법령에 의해 관리 및 규제하는 주 위원회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또한, 법제화된 자격증 취득과 연계된 MFT 석박사 프로그램들은 최대 규모의 부부가족상담학회인 AAMFT를 모체로 하는 MFT교육 인증기관으로부터 체계적이고 까다로운 심사과정을 통한 인증을 받도록 교육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국외의 상황이긴 하지만, 다른 정신건강 분야에 비해 짧은 역사를 가진 MFT 분야가 이렇게 탄탄한 구조적인 프레임을 갖출 수 있었던 건, 다른 분야와는 차별화된 ‘부부가족상담’만의 독특한 관점과 정체성이 중요하게 기여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컨택트’나 ‘아바타’에서 다른 별에서 온 존재들이 보여주었던 세계관처럼(‘컨택트’에서는 원형구도를 갖춘 문자를 통해 드러나죠), 상호연결성과 순환성에 바탕을 둔 독특한 관점이 가족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는 이 시대의 요구에 적합하게 맞아 들어가면서 MFT 분야가 발전할 수 밖에 없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렇다면, 이 분야가 이미 갖추고 있는 그 독특한 정체성과 자원을 더 발견해나가고 강화하는 데 힘을 모아야겠지요. ‘어떤 부부가족상담 이론이 더 효과적인가’에 관한 질문도 중요하지만, 특정한 개별 이론에 대한 선호가 다 다르더라도 전체적인 관점에서 ‘부부가족상담’적인 관점과 정체성을 바탕으로 하여 어떻게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가에 관한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부가족상담학회에서 5월 26일에 개최하는 2017춘계학술대회가 ‘통합적/절충적 관점’에 관해 다루고 있는 것도 이와 유사한 맥락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별 이론에 대한 초점보다는, 이 분야가 이미 갖추고 있는, 다른 분야와는 차별화된 독특한 접근방식과 그 치료적 자원을 전체적이고도 통합적인 관점에서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마치 ‘다른 별에서 온 것 같은’ 독특한 관점과 접근방식을 매력으로 가진 부부가족상담이 대표적인 정신건강 분야로 더욱 발전해나가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2017-05-10
부부는 가족이라, 부부문제는 가족문제인데 왜 부부를 가족에 덧붙이나? ‘상담’ 또는 ‘심리치료’라는 용어는 현대인들에게는 익숙한 용어이지만, 'talking therapy'라는 개념을 프로이드가 소개하기 전까지는 이런 발상은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프로이드 등의 개척자들의 노력으로 'talking'이 육체적인 고통을 ‘therapy'할 수 있다는 확신은 개인상담으로 적용되었고, 후에는 집단상담, 그리고 가족상담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면 부부상담은 어떻게 발전되었을까? 과거나 현재나 부부들은 문제가 생길 때, 정신건강 전문가를 찾기 보다는 의사, 성직자, 변호사 또는 삶의 지혜자들을 찾으며 도움을 구한다. 초기의 부부관계 상담을 위한 전문센터로는 미국에서 1930년경에 설립된 가족관계연구소(American Institute of Family Relation)이며, 1932년에 설립된 필라델피아 결혼생활상담소 (Marriage Council of Philadelphia) 등이 있다. 전문기관이 생겨나는 한편, 정신분석가들 사이에서는 부부를 함께 만나는 치료형태가 시도되고 있었다. 대다수의 정신분석가가 가족과 접촉을 하지 않는 프로이드의 규칙을 따랐지만, 모험적인 정신분석가들 중 몇몇은 규칙을 어기면서 부부를 함께 치료하기 시작하였다. 1948년에 뉴욕 정신분석연구소의 벨라 미틀맨(Bela Mittleman)은 미국에서 부부를 함께 치료했던 방법론에 대해 보고서를 썼다. 미틀맨은 남편과 아내가 동일한 분석가에게 함께 치료를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을 함께 볼 때 그들의 비합리적인 사고를 재검토할 수 있다고 제안하였다. 즉, 대상과의 관계에서 드러나 보이는 현실이 그들 각각의 심리 내면을 설명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시각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것이었다. 한편 영국에서는 정신분석가들이 대상관계 이론에 주된 관심을 두고 있던 중에, 타비스톡 클리닉의 헨리 딕스(Henry Dicks)와 그의 동료들은 가족정신의학부서를 설립하였다. 곧 이어 마이클과 발린츠는 가족심의국(Family Discussion Bureau)과 타비스톡 클리닉의 사업을 제휴함으로서 부부상담 업무를 대행하는 산하기관으로 그리고 간접적으로 부부 치료 분야에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1956년 미틀맨은 결혼관계의 장애와 치료에 대해 보다 광범위해진 그의 관점을 피력하였다. 공격적이고/복종하는, 회피하고/요구하는/패턴을 포함하여 부부간에 상보적으로 존재하는 수많은 패턴에 대하여 서술하였다. 또한, 이와 비슷한 시기에 돈 잭슨과 제이 해일리는 의사소통 분석을 통한 부부치료에 대해 저술하였다. 이 두 학자의 의견이 많은 부부치료사에 의해 받아들여지면서 이후 부부치료 분야는 가족치료 영역으로 더욱 흡수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실제로, 한편에서는 가족상담(치료)과 부부상담(치료)를 구분하지 않는다. 부부를 가족체계의 특정 하위 체계라는 관점에서 간주하는 경우에는 부부상담(치료)을 가족상담(치료)의 범주에서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부부상담(치료)을 가족상담(치료)과 구별된 영역으로 보기도 한다. 부부상담과 가족상담은 강조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부부상담은 가족상담보다 개인의 경험과 심리에 중점을 둔다. 따라서 가족구성원들의 감정, 바램. 두려움 등을 주로 다루는 가족상담에서는, 부부들의 심리내적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부부상담에서는 단 두 사람만의 상호작용과 친밀한 관계에 더 초점을 두어야 하기 때문에 가족상담과는 구별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입장의 차이가 부부상담과 가족상담을 구분하기도 하고, 부부가족상담이라고 하기도 하는 것이다.
2017-04-10
제가 석사과정 공부를 하며 일하던 곳에서 어느 날 큰 사례회의가 열렸습니다. 심리학과, 교육학과, 사회복지학과, (당시의) 소비자-아동학과 교수님들과 석박사 학생들 모두가 모이는 자리였습니다. 두 시간 가까이 한 학생에 대한 열띤 토론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그 학생의 주호소문제가 개인심리적인 주제와 심리검사 결과, 상담개입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모두 혼란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어느 교수님의 한 마디가 그 모든 혼동과 질문을 정리해주었습니다. "이 친구가 가족의 영웅이네요. 가족 대표로 트로피를 혼자 들고 있어!" 정말 이 '영웅'이라는 표현이 그 학생이 괴로워하던 문제나 심리내적 상태, 주변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게 도와주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이르기까지 상담자는 40여회 이 학생을 만나야했으며, 이 한 문장을 듣기 전까지 사례회의 참석자들은 안개 속에서 답답함을 느껴야했습니다. 저는 가족상담이론을 공부한 후, 보웬이나 사티어의 가계도를 상담 초기 2-3회기에 걸쳐 정확히 그릴 수 있다면 우리가 만나는 내담자들이 힘들어하는 문제와 배경, 그리고 해결 방향까지도 어느 정도 큰 윤곽을 비교적 쉽고 정확하게 그릴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얼마나 가슴이 뻥 뚫리고 머리가 맑아졌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지금도 내담자들을 만나며 가계도를 그릴 때 느끼는 선명함과 감동은 늘 상담자로서의 제 삶에 활력을 부여하고 가야할 길을 알려줍니다. 오래 전, 70이 넘으신 할머니가 남편과 관계를 회복하고 싶으시다고 저를 찾으셨습니다. 저는 이렇게 나이가 많으신 분이 변하실까 의구심이 들어 상담시작하기를 주저했습니다. 그런데 워낙 이 할머니가 변화에 대한 의지가 강하시고, 절대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으셔서 상담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내담자 보호를 위해 여러가지 정보는 섞이거나 바뀌어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연세가 많으신상담 초기, 가계도를 통해 알게된 할머니의 가족 내 역할은 '어머니의 위로자'였습니다. 즉 어머니와 심하게 융해가 되어 있었고, 경제적-지적으로 무능한 아버지와 능력자 어머니 사이에서 부모 모두의 마스코트, 어머니에게 기쁨을 주기 위한 영웅 역할을 동시에 하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여쭤보니, "남편은 저를 속였습니다. 해외유학을 다녀왔다고 해서 유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결혼하였는데, 지방대를 졸업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어요. 그 때 이후 저는 남편을 무시했고, 남편을 대신하여 가정 경제를 일으켜 세웠지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남편에 대한 기대가 무너진 결혼 초기부터 두 분의 관계는 계속 멀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개인상담이론만 알았다면 저는 다면적 인성검사에서 밝혀진 억압과 숨은 분노의 이유를 쉽게 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족상담이론을 함께 알고 있었던 덕분에 할머니-할아버지의 관계를 역사적, 구조적으로 더 빠르고 쉽게 이해하고 개입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의 제 관심사는 개인상담이론과 가족상담이론을 연결시켜 보는 것입니다. 위로와 공감을 제공하는 코헛의 이상화 자기대상은 보웬의 정서적 관계가 너무 소원하거나 밀착되었을 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부모가 정서적으로 너무 멀리 있거나 단절된 자리에 있다면 그 부모에게서 자녀는 위로와 공감을 제공받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만하면 잘 했어!'라고 능력감을 부여하는 코헛의 쌍둥이 자기대상은 영웅 역할을 하던 자녀에게 과대해지고, 사고뭉치 역할을 하는 자녀에게는 과소해지는 것을 봅니다. 삶의 야망, 방향을 제시하는 코헛의 거대 자기대상은 병리적이고 역기능적인 가족 규칙이나 신화를 가진 가족에게서 심하게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저는 심한 경우, '나 때문에 우리 가족이 되는 일이 없다'는 말도 안되는 가족 신화를 마음에 담고 살았던 분을 만나기도 하였습니다. 온 가족의 분노와 불안을 가족들이 이 사람에게 덮어씌운 것이지요. 이 분은 이와같은 불합리한 가족신화를 발견하고 그 배경을 이해한 뒤에야, 생산적이고 소중한 자신만의 삶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부부가족상담학회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도움이 되는 분명한 상담 개념과 방법들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하는 학회 활동을 기다리게 됩니다. 기회 닿는 대로 학회에서 얼굴을 마주 하고 학회원분들을 만나뵙길 기대합니다.
2017-03-10
안녕하세요. 부부가족상담학회 홍보위원장을 맡게 된 정병호 교수입니다.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 가운데 가족의 문제는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풀어가야 할 중요한 부분인데 가족치료는 이를 담당할 수 있는 중요한 상담학의 영역입니다. 가족 공동체의 소중함은 사람들이 그 가운데서 경험할 수 있는 치유, 쉼, 회복, 삶의 의미, 개인의 연속적인 정체성을 발견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러한 거룩한 그리고 험난한 전문적인 일에 함께 동참하며 가족상담분야에서 직면하는 여러 문제들의 답을 함께 찾아가는 귀한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은 가족치료에서 흔히 나오게 되는 문제 가운데 부모들이 자녀들을 비난하는 부분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종종 가족치료에서 가족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책임지기 보다는 그 문제를 다른 가족 구성원들에게 떠 넘기며 비난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비난의 대상은 상대 배우자가 되지만 어떤 경우에는 모든 가족 어려움의 원인으로 자녀가 문제라고 지적하며 비난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제가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한 상담센터에서 상담사로 근무할 때 담당했던 케이스인데 가족과 함께 초등 학교 5학년 남자 아이가 부모와 함께 왔습니다. 두 부모님은 그들의 아들이 학교에서 다른 아동들과 관계에서 어려움이 많고 집에서도 5살 어린 남동생에게 놀림을 받을 정도로 무력한 생활을 한다고 하며 그 가정의 어려움들이 그들의 아들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아동의 문제가 심각해 따로 면담을 했고 그의 진단명은 주요우울증 장애와 psychotic feature를 가지고 있었습니다(심각한 우울증으로 인한 환각이 있었는데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성인이 10m 정도의 거리에서 항상 그를 주시하고 있다고 보고함). 이 아동은 개인상담을 7개월 정도 받았으며 한 달에 한번 꼴로 가족상담을 받았습니다. 이를 통해 그의 부모들은 자신들의 가족체계에서의 문제들을 받아들이고 논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문제들은, 부부간의 대화의 부제, 부모의 막내딸에 대한 편애, 아버지 자신의 무기력한 우울한 모습을 아들에게 보았을 때 이를 참지 못했던 분노, 부부가 서로 아들문제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이 아동은 치료가 끝나갈 무렵에 더 이상의 환각을 갖지 않게 되었으며 학교에서의 또래와의 관계는 개선되었으며 그가 남동생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당하는 관계가 아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되었고 그의 우울증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의 부모들은 누구를 탓하는 대화가 아닌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을 지며 서로를 지지하고 자신들의 문제들을 그들의 자녀에게 탓하지 않게 되었고 가족간의 갈등은 현저하게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가족치료에서 부모들은 아동들의 문제가 그들의 가장 심각한 어려움이라 생각하는 일은 종종 있는 일들인데 이때 상담사들은 투사를 통해 부모들이 쉽게 자신들의 문제를 자녀들에게 전가한다는 것을 인지하게 도움을 주는 것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근본적인 가족문제의 중요한 원인들을 찾아 해결하는 것을 도움 주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2017-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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